◇숲의 서사시/존 펄린 지음 송명규 옮김/413쪽 따님 2만원
‘문명의 진보에서 나무가 중대한 역할을 했다고 역설한다면 과장되게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모든 시대를 통해 나무는 불을 지피는 재료로 이용되어 왔다. 나무를 땔 때 나오는 열 덕분에 인간은 지구를 자신에게 알맞은 곳으로 바꿔나갈 수 있었다’.
이 책은 아주 독특하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인류문명의 변동을 그려낸 역사책이다. 일차적인 연료이자 건축자재였던 한가지 자원, 즉 나무를 출발점으로 삼아 그것이 인간사회에 어떻게 봉사했으며 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는 것.
나무는 많은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했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나무를 토대로 최초의 문명을 꽃피웠고 숲이 사라지자 그들의 제국도 무너졌다. 에게해의 한 섬에 불과했던 크레타는 메소포타미아인들과의 나무교역에서 얻은 부로써 지중해를 지배했다. 그들은 찬란한 도시 크노소스를 건설했지만 숲의 고갈과 함께 스러졌다.
저자는 많은 전쟁과 혁명의 원인이나 목적도 나무 공급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다. 아테네 제국과 펠로폰네소스 동맹은 그리스 북부와 시칠리아의 삼림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웠다. 미국 이주민들과 영국 사이에서 나무에 대한 권리를 두고 일어난 갈등이 독립전쟁을 야기한 배경의 하나였다. 영국은 미국의 최상급 나무들을 영국 해군용으로 확보하려 했지만 미국인들은 원하는 나무를 마음대로 베어넘길 수 있는 자유를 원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는 인간행위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문명이 발전하고 성장하면 숲은 언제나 뒷걸음친다는 슬픈 교훈도 깨닫게 된다.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