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갈 때 만원 한 장도 적은 돈이 아니다. 꿀수박 한 통 3000원, 아오리사과 5개 1000원, 햇당근 한 무더기 1000원….
애호박 두 개에 1000원, 표고버섯 한 근 400g에 2000원을 주고 장바구니를 두둑히 채워오다 집 앞 백화점에 가보았다. 그 곳에서는 애호박 한 개를 1800원, 표고버섯 100g을2500원에 팔고 있었다.
요즘 오랜 비 때문에 채소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지만 상품(上品))과 하품(下品)의 차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큰 격차였다.
인천 부평구의 재래시장 중 손꼽히는 부평시장은 도소매가 같이 이루어지고 있어 물건이 풍성하고 저렴하다. 일명 ‘깡시장’이라고 불리는 이 곳은 12∼13년 전 산지에서 직접 올라오는 농산물을 경매에 붙이던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인천지역에 삼산농산물 도매시장과 구월농산물 도매시장 등 2곳의 도매시장이 생긴 이래 거래는 많이 줄었지만 재래시장의 독특한 분위기로 여전히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이다.
시장에는 방금 산지에서 올라온 농산물이 넘친다. 트럭에서 바로 내리고 있는 산지직송 배추며 무는 물론 텃밭에서 가꾼 것을 들고 나온 할머니들의 좌판에도 싱싱한 자연의 소산이 가득하다.
비닐랩으로 포장되어 냉장고에 들어가 유통기한을 연장하고 있는 백화점, 대형할인점 등의 먹을거리와는 다르다.
신선도를 유지시켜주는 인공 장치가 없어 농산물이 지니고 있는 ‘생명력’을 다하면 상품 가치도 끝난다. 그래서 장이 파할 무렵이면 ‘덤’도 후해진다.
저울에 올려놓고 눈금대로 값을 매기는 야박함은 볼 수가 없다. 버섯 두 종류를 샀더니 찌개에 넣으라며 매운 청양고추 한 줌을 얹어 준다.
노점에 쭈그리고 앉아 편한 얼굴을 마주하는 일도 시장에 가서 얻는 기쁨이다.
시장 어귀에서 호박잎 억센 줄기를 벗기거나 쪽파를 다듬느라 손톱 끝이 까매진 할머니, 좌판에 둘러 앉아 열무비빔밥으로 늦은 점심을 나누고 있는 아주머니들을 마주친다. 그 순박한 얼굴들을 보면 어느 새 내 마음도 순해지는 걸 느낀다. 그래서 시장에 가면 발걸음이 느려지는지 모른다.
시장 골목에 우렁차게 퍼지는 소리.
“골라 골라 골라! 원피스 한 벌에 4000원.”
생생한 삶의 기운이 넘치는 소리를 따라 여름옷 정리가 한창인 가게로 들어가 본다.
때 지난 여름 셔츠, 남방이 두 장에 5000원이다. 1000원 짜리 옷도 수북히 쌓여 있다. 헐값에 정리하는 옷인데도 맘대로 입어 보라고 한다. 탈의실 같은 것은 없다.
어떤 사람은 판매대에 쌓인 고무줄치마를 입고 바지를 갈아입는다. 치마도 걸치지 않고 맨살 드러내고 옷을 갈아입어보는 아주머니도 있다.
신선한 야채를 듬뿍 식탁에 올리고 싶으면, 사람 사는 냄새가 그리우면 재래시장에 가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