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동안 애써 가꾼 곡식과 과일을 놓고 오랜만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웃음꽃을 피우는 추석은 언제나 풍요롭다. 제사나 성묘를 위해 모인 가족과 친지끼리 선물을 주고받는 일은 추석을 한결 정겹게 한다. 그러나 부모나 친지, 그리고 평소 고마움을 전해야 하는 많은 분들께 부담스럽지 않고 기분 좋게 받을 수 있는 선물을 드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작년 추석이 지나고 시민단체 소비자 상담실에 접수된 사례를 보면 업체의 얄팍한 상술로 인해 선물을 전하는 사람의 정성은커녕 이미지만 더 나빠졌다는 하소연이 한둘이 아니었다.
우선 과대포장의 문제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편리함 때문에 업체에서 내놓은 추석 기획 선물세트를 구입하는데 이런 선물세트들은 보통 내용물보다 포장이 더 요란하다. 플라스틱 포장용기에 내용물을 담고 딱딱한 종이상자에 넣어 비닐포장을 한 후 다시 쇼핑봉투에 담기까지 보통 3∼5번 이상 포장을 하게 된다. 받을 때는 푸짐하고 그럴듯해 보일지 모르지만 뜯는 순간 환상은 깨지고 만다.
더구나 선물세트를 잘 살펴보면 낱개 구입이 더 싼 경우도 많다. 조사에 따르면 조미료 세트 등 일부 공산품 선물세트의 가격은 포장내용물이 낱개 가격 합계액보다 20% 정도 높게 거래되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제조일자가 오래된 제품이 끼여 있거나 잘 안 팔리는 제품을 끼워 넣는 경우도 있어 소비자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내용으로 승부하기가 두렵다보니 이를 두껍게 포장해 소비자와 경쟁업체를 상대로 한 페어플레이를 저버리는 행동인 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갈비, 과일, 생선 등 신선식품들의 겉과 속이 다른 경우다. 과일의 경우 박스로 된 상품이라면 아래쪽에 든 과일의 품질은 엉망이기 일쑤다. 포장되어 있는 한과나 갈비 굴비의 경우도 아래쪽의 상품은 물러있거나 모양이 좋지 않아도 포장을 해놓았기 때문에 선물을 주는 쪽은 상품의 질을 알 수 없다. 형편없는 상품이 배달되어도 선물을 주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서 불만을 얘기하지 않는 관행을 업체들이 역이용한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명절 선물을 들고 친지나 어른을 직접 방문하는 풍경이 낯설 만큼 택배서비스가 보편화되었는데 그에 따른 피해사례도 늘고 있다. 추석이 한참 지나서야 선물이 배달돼 상하거나 물러터지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약속한 기일 안에 배달할 수 없으면 택배 신청을 받지 않든지, 늦어진다면 보관에 신경을 써야 할텐데 접수는 접수대로 받아놓고 배달은 배달대로 늦어져 음식의 경우 먹을 수 없게 되는 일이 많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설탕포대를 지게에 지고 다니며 친척집에 나눠주시던 아버지 모습이 생각난다. 선물을 다 돌린 후 빈 지게를 지고 보름달 마냥 환하게 웃으시며 걸어오시는 아버지의 걸음은 마치 춤을 추는 듯했다. 하지만 요즘은 선물을 골라주는 전문 직종이 생길 만큼 선물 고르기, 주기가 즐거움이 아닌 또다른 일거리이며 부담이다. 추석에 선물을 주고받는 일이 사람을 기쁘게 하고 받는 사람을 뿌듯하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추석대목을 겨냥하고 있는 선물업체와 택배업체의 성실하고 공정한 페어플레이가 중요하다.
김미영 고양녹색소비자연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