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고(最古) 영화제인 베니스 국제영화제의 올해 경향을 요약하면 ‘금기에 대한 도전과 고정관념의 뒤집기’라고 할 수 있다.
경쟁부문 최고의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탄 영국영화 ‘막달레나 시스터즈’(감독 피터 뮬란)는 가톨릭 교회가 운영하는 아일랜드의 세탁소에서 혹사당하는 여성 4명의 이야기로, 교회에서 은밀하게 벌어지는 억압과 폭력을 다뤘다. 이 영화의 수상소식이 전해지자 바티칸은 성명을 내고 “이 영화가 상을 탄 유일한 이유는 반(反)가톨릭이기 때문”이라며 “이는 가톨릭 교회에 대한 원한에 사무친 도발”이라고 비난했다.
수상작은 아니지만 9.11 테러를 다룬 국제 프로젝트 ‘9’11’01’은 테러를 반미(反美)적 시각에서 그려 영화제 내내 파문을 일으켰다. 전과자와 뇌성마비 장애인의 사랑을 그린 ‘오아시스’ 역시 기존 고정관념을 뒤집는 파격적 멜로. 올해의 베니스는 상업적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편향이 지나치다는 우려를 씻고, 기존 가치를 전복하고 도발하는 용감한 영화들 편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영화 '오아시스'에서 건달과 중증 장애인의 사랑을 보여주는 설경구와 문소리. 사진제공 유니코리아 문예투자
‘오아시스’는 6일과 7일(현지시간) 열린 시사회에서 기립박수를 받았고 “사랑과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 영화”등의 찬사를 받으며 일찌감치 수상이 예견되었다. 영화평론가인 서울예대 강한섭 교수는 “서구 예술영화들이 날로 쇠퇴해가고 있는 환경에서, 이번 ‘오아시스’의 수상은 한국이 세계 영화예술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새로운 근거지로서 주목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했다.
또한 그동안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탔던 영화들이 대개 한국의 전통이나 토속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대를 배경으로 한 ‘오아시스’의 수상은 이국적 동양문화에 대한 서구인들의 호기심 차원을 뛰어넘어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오아시스' 맛보기
예고 , 스틸
‘오아시스’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는 이번 수상을 계기로 서울과 부산, 인천의 CGV, 메가박스 등 복합상영관에서 ‘오아시스’의 장기상영을 계획하고 있다.
이 밖의 주요 부문 수상자(작)은 다음과 같다 (괄호안은 국적·영화) ▽남우주연상〓스테파노 아코르시(이탈리아·‘사랑으로 불리는 여행’) ▽여우주연상〓줄리안 무어(미국·‘천국에서 먼’) ▽심사위원 대상〓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 감독(러시아·‘바보들의 집’) ▽특별상〓에드워드 래크먼(미국·‘천국에서 먼’)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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