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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보니]이덕근/˝미국을 따르라˝ 일방통행에 불안

입력 | 2002-09-10 18:32:00


전대미문의 엄청난 테러가 발생한지 꼭 1년이 됐다. ‘9·11’은 공교롭게도 미국의 비상구조 요청 전화번호인 ‘911(한국의 119에 해당)’과 숫자가 같다. 미국 전역에 비상벨이 울린 1년 전 많은 재미동포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테러에 큰 충격을 받았고 죄 없이 숨진 많은 사람들에 대해 깊은 슬픔과 연민을 느꼈다. 그러나 아무래도 미국인들만큼 통절한 아픔을 느끼긴 어려웠을 것 같다. 일각에선 테러의 피해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 볼 때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오만함이 참극을 초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9·11은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었다. 그 직후 발생한 탄저균 테러의 공포로 인해 한동안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고 우편물을 개봉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민과 비자 수속도 매우 까다로워져서 평소 1, 2개월이면 되던 비자 변경은 4개월 이상 걸리는 것이 예사가 됐다. 영주권 발급에 걸리는 시간은 아직 9·11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은 채 신청이 거부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또 의회에선 외국인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쇄국주의적 법안이 통과돼 외국인 영주권자들조차 여차하면 미국에서 추방될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가장 본질적인 변화는 9·11 이후 미국인들이 외국인을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는 점일 것이다. 그 눈빛은 묻는다. “당신들은 미국의 편인가, 아닌가.”

실제로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하는 국가들은 미국의 편, 불참하는 국가들은 적의 편이라고 일찌감치 선언했었다. 테러와의 전쟁을 지원한 국가들 가운데는 어쩌면 줄을 잘못 섰다가 미국의 눈 밖에 날 것을 우려했던 국가들도 없진 않을 것이다.

지난 1년간 일어난 수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은 유일한 것은 미국의 일방주의인 것 같다. 미국에 살며 지켜본 많은 미국인들은 아직도 미국 중심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친 미국의 모습에 대해선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아 안타깝게 생각될 때가 많다.

최근의 언론 보도를 보면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와의 전쟁을 이미 결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9·11테러의 원인과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른 전운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이맘때 미국의 국적 1호였던 오사마 빈 라덴이 왜 슬그머니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으로 바뀌게 됐는 지를 납득할 수 있는 미국인은 과연 얼마나 될까.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면 불가피하게 많은 인명이 희생될 것이 분명하다. 이라크의 바그다드는 거의 석기시대 수준으로 파괴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공격으로 ‘석기인’이 된 이라크인들이 분노에 차 어느 동굴 속에 모여 미국에 맞서 또 다른 9·11을 준비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9·11 이후 미국에선 시민권을 신청하는 외국 영주권자들의 숫자가 크게 증가했다. 당신은 어느 편이냐는 미국인들의 물음에 ‘나도 미국시민’이라고 답변하기 위해서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은 미국편에 서서 볼 때도 불안하기만 하다.

이덕근 재미 과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