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은 불편한 감독이다. ‘오아시스’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고 귀국해서도 “내용도 불편하고, 불편한 방식으로 전달되는 영화인데 잘 봐준 관객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일부러 관객이 불편해 하도록 만들었다는 얘기다. 남루한 현실도 그림처럼 환상적으로 표현하고, 주인공도 잘생긴 배우를 등장시켜 더 아름답게 보여주는 게 일반적 멜로 영화인데 그는 이 같은 관습을 사정없이 깨버렸다.
▷‘오아시스’가 보기 불편한 건 전과자와 장애인이라는, 감독의 말에 따르면 ‘아름답지 않은’ 사람들을 아무런 영화적 여과장치없이 전혀 아름답지 않게 보여주기 때문만이 아니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몸을 뒤트는 여주인공의 모습 속에서 나조차 외면하고 싶은 나의 실체를 보는 것 같아서다. 나이 서른이 되도록 대책없이 살아온 시동생에게 형수가 “삼촌이 없었을 때가 좋았다”고 대놓고 말하는 장면에선 지극히 이기적인 나의 속내를 들킨 듯하다. 도대체 영화가 영화 같지 않고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다. 정말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삶의 진실을 버선목 뒤집듯 벗겨내서 눈앞에 들이대니 보기가 불편한 거다.
▷진실이란 그렇게 불편하다. 자신과 관련된 진실은 특히 그렇다. 알면 병이요,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닐 터이다. 어느 조직이든 입바른 사람 치고 평판 좋은 사람 거의 없다. 외교적 수사는 그래서 필요하다. 미국 TV ‘오프라쇼’에 나와 유명해진 심리학자 닥터 필은 상담을 요청하는 내담자에게 “당신은 이러저러한 사람이니 이러저러하게 고쳐야 한다”고 말해주면 싫어하더라고 했다. 문제가 생겼으니 충고를 해달라는 사람도 자신이 맞고 남들이 틀렸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그걸 확인받고 싶어할 뿐, 진실을 듣는 건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에서 지금 성장세를 타고 있는 것이 ‘관심 산업’이라고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는 지적한다. 고객이 듣고 싶어하는 특별한 ‘진실’만 맞춤제공하는 업종이다. 심리치료사, 고급 헬스클럽의 코치 등은 손님이 돈을 많이 지불할수록 가장 친한 친구의 자세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손님이 가장 편안하게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준다. 이렇게까지 치닫기 전에, 그래도 진실을 말해주는 입바른 사람이 있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이 감독은 ‘오아시스’에서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상황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진실의 불편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 이 감독의 존재는 그래서 더욱 반갑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