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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 포커스]서울대 상과대학 66학번 ´쌍육회´

입력 | 2002-09-12 16:10:00

서울대 상과대학 66학번 출신들. 전영한기자scoopjyh@donga.com



《서울대 상과대학 66학번 입학생들의 모임을 동문들끼리는 ‘쌍육회’라고 부른다. ‘2002년 쌍육회원명부’에 따르면 회원은 모두 186명. 경제와 경영학과가 각각 48명, 상학과가 70명,무역학과가 20명이다. 경제학과 쌍육회에는 최근 두 번의 경사가 있었다.

7월에는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정운찬 박사가 서울대 총장으로 취임했고 8월에는 경희대 국제대학원장 김중수 박사가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 최고 대학의 총장과 최고 연구기관의 기관장이 된 동문을 축하하는 조촐한 저녁 모임이 4일 서울 강남의 한 중식당에서 있었다.

이들의 스승인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가 마련한 자리였다.》

이날 모임에는 민상기 서울대 교수, 이영선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 서준호 서강대 교수, 김승진 한국외국어대 교수,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구본영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 이석영 중소기업청장이 나왔다. 상학과 출신 장승우 기획예산처장관과 67학번 입학생인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도 자리를 함께 했다. 이들은 조순 교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고 서로에게는 ‘운찬이’ ‘본영이’ 하고 이름을 부르거나 ‘박사’라는 호칭을 썼다.

태풍이 지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수해 이야기부터 나왔다.

“선생님 댁은 어찌 됐나요.”

“전답이 바다가 됐지. 강릉이 유독 피해가 커. 한국 경제 사상 최악일 거야.”

11명이 둘러앉으니 자리가 다소 좁아 보였다.

“선생님, 방이 좁아 죄송합니다.”

“방이 좁은 건 문제가 아니네. 방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이 좋아야 하는 것이지.”

조 교수는 “좋은 술을 한 병 가져오려고 챙겨뒀는데 집을 나서면서 잊어버렸네. 기사에게 가져오라고 했네”라고 했다.

기사가 발렌타인 17년산을 가져오는 동안 조교수는 A4용지 크기의 프린트물을 나눠주었다. 자필로 쓴 한시 두 수가 적혀 있었다. 조 교수가 정계에 진출해 바쁠 때 평양고보 동기생인 연세대 김동길 명예교수가 보내왔다는 주자(朱子)의 시구였다.

‘아담한 연못이 하나 생겼네/해와 구름의 그림자가 수면 위를 오가네/ 어찌 이리도 깨끗할꼬/연못의 상류에서 깨끗한 물이 흘러들기 때문이라네….’

●수재들, 사부를 만나다

1966년이면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한창 진행되던 무렵이다. ‘수출입국’ ‘국민소득 ○○불 달성’이라는 표어를 지겹도록 보고 듣고 살았던 경제의 시대에 경제학과는 인기 학과였다. 66년에는 경제학과의 커트라인이 법대를 앞질렀다.

“국어 영어 수학 등 5개 과목을 주관식으로 치렀는데 500점 만점 중 경제학과의 커트라인이 334점으로 법대보다 10점 이상 높았다.”

조 교수는 전국에서 모여든 수재들에게 지적 열등감과 충격을 안겨준 사람이다.

67년 2학기부터 서울대에서 경제학 강의를 했는데 쌍육회 회원들은 “우리들을 흔들어 놓았다”고 표현했다. 미국의 최신 경제 이론에다가 해박한 동양사 지식, 유창한 영어와 한문, 서른하나의 나이에 아내와 아이를 남겨두고 결연히 유학을 떠나 9년만에 돌아온 조 교수가 뿜어내는 인간적인 매력에 제자들은 빠져들었다.

“당시 경제학은 정치경제학이나 경제사가 주류를 이뤘다. 정치학과나 사회학과 강의 내용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그때 버클리에서 미국의 이론경제학을 공부한 선생님이 나타난 것이다.”(김영섭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선생님은 열정적이셨다. 100분 수업을 1분도 빼먹지 않고 다 채우셨다. 영어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며 리포트를 영어로 써내면 가산점을 주셨다. 한글로 쓰면 운찬이나 승진이보다 점수를 못 받을 것 같아서 영어로 썼다.”(구 고문)

●줄이은 미국 유학행렬

‘나도 미국에 다녀오면 선생님 같이 되려나.’ 하지만 검게 물들인 군복과 군화 차림에 빛나는 것이라고는 서울대 배지밖에 없는 가난한 학생들에게 유학은 손에 닿는 현실이 아니었다.

중학교 때부터 학비를 벌어쓴 정 총장도 졸업 후 한국은행에 취직했다.

“어느날 선생님이 한국은행으로 오셨다. 은행 창구에서 일하는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운찬아, 유학 가거라’.”

정 총장은 조 교수의 추천서를 받아쥐고 미국 프린스턴대의 장학생이 돼 떠났다.

‘운찬이가 유학갔다더라’는 소문이 돌자 동기들도 용기를 냈다. 민상기 교수는 미시간대(앤아버)로, 서준호 교수는 워싱턴대로 떠났다. 김승진 교수, 고려대 강호진 윤영섭 교수, 홍익대 황두현 교수는 오하이오주립대 출신이다. 서강대 이영구 교수는 미네소타대, 이영선 원장과 서울시립대 이근식 교수는 메릴랜드에서 함께 공부했고 구 고문과 이경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는 조지 워싱턴대 동문이다. 48명의 동기생들 가운데 미국에서 유학한 사람이 18명. 현재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동문은 16명이다.

이들은 쌍육회의 공과 과를 이렇게 평가한다.

“66학번들이 한꺼번에 유학함으로써 연구층의 양적 팽창을 이뤄냈다. 후학들을 열심히 길러낸 데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법대 출신들을 밀어내고 경제학도들이 경제 정책을 담당하면서 정책에 시장 논리가 많이 반영됐다. 80년대의 무역 금융 자본시장의 자유화 등이 가시적인 결과물들이다. 여기에 66학번들이 한몫을 담당했다고 생각한다.”

“98년도 외환위기를 예견하고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아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를 맞은 데 대해서는 이코노미스트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학연에 이은 새로운 인연들

학교에서 시작된 인연은 새 인연으로 이어졌다. 구본영 고문과 김영섭 고문은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차례로 경제 수석을 지냈다. 구 고문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을 지낸 이경태 박사에게 OECD 대사 자리를 넘겨주었다. 구 고문은 또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경제비서관으로 일할 때는 대통령에게 건의해 경제부총리였던 조 교수와의 면담을 정례화했다”고 회고했다.

2000년 무렵엔 주요 대학의 보직을 모두 쌍육회 경제학과 출신이 차지하기도 했다. 민상기 교수가 서울대 기획실장, 김성인 교수가 고려대 입학관리실장, 이영선 교수가 연세대 기획실장을 맡았다. 서준호 교수가 서강대 기획처장과 입학처장을, 정일용 교수가 한국외국어대 교무처장을 맡았다.

대학에 적을 둔 동기들은 정 총장이 취임 직후 지역할당제 문제를 들고 나왔을 때 “취지가 좋다. 하지만 기자들에게 성급하게 던지지 말고 먼저 학교 구성원들과 잘 조율하라”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쌍육회의 사사로운 학연은 조 교수가 정계에 진출하면서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은사의 정계 진출에 대해 쌍육회원들 간에도 찬반이 엇갈렸다. 지금도 당시 이야기를 꺼내면 분위기가 서먹해진다.

하지만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우리들도 없었다”고 말한다. 요즘도 매일 영자지를 구독하고 영어 원서를 읽으며 연구의 끈을 놓지 않는 스승에게서 제자들은 여전히 지적 자극을 받는다. 정 박사가 서울대 총장이 돼 가장 먼저 한 일은 스승을 명예교수로 모시는 일이었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