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중앙정보부가 “북의 지령을 받은 지하공산조직으로 민청학련의 배후조직”이라고 발표한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은 조작됐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韓相範)는 12일 “인혁당 재건위 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경찰관과 피의자들이 수감됐던 교도소의 교도관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중정이 사건 관련자들에게 구타와 물고문, 전기고문을 자행했고 피의자 신문조사와 진술조서를 위조해 사건을 조작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군사법원에서 8명이 사형선고를 받은 뒤 20여시간 만에 형이 집행돼 ‘사법살인’이라는 오명을 얻었던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조작됐다는 피해자측의 주장은 있었지만 국가기관이 수사 관련자들의 진술을 기초로 조작 사실을 확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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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혁당 재건위사건 이란
진상규명위는 “당시 경찰 수사관 4명 모두 ‘자백 이외에 조직결성 관련 증거가 없었다’고 진술했고 검찰에서 제출한 증거목록에도 지하당 결성에 관한 증거 자료는 없었다”며 인혁당 재건위 조직의 존재 자체를 부인했다.
진상규명위는 “중정 수사팀장인 윤모씨가 수사관들에게 ‘물건(조작사건)을 만들어라’고 지시한 일이 있다는 진술을 당시 수사관들로부터 확보했다”며 “피의자들이 혐의사실을 부인하더라도 중정 수사팀이 고문을 하면 그 다음에는 별다른 저항 없이 시인조서를 작성할 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진상규명위는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중정 수사관들이 수시로 입회했고 관련자들이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혐의 사실을 부인하면 지하보일러실로 끌고 가 고문을 했으며 검사가 물으면 혐의 사실을 인정하도록 강요했다는 당시 수사관들의 진술도 공개했다.
진상규명위는 “재판을 맡은 군사법원 재판부도 피고인이 부인한 사실을 정반대로 기록하거나 고문에 관한 발언을 기록에서 누락시키는 방식으로 공판 조서를 위조했으며 죽음을 앞두고 한 유언마저 조작했다”고 밝혔다.
진상규명위는 진술조서와 피의자 신문조서가 날조되고 재판 과정에도 위법한 점이 있었다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당시 수사관과 변호사의 진술도 함께 공개했다.
김준곤(金焌坤) 상임위원은 “기존의 형 선고를 변경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나올 경우 재심 사유가 되는데 이번에 밝혀진 내용은 상당 부분 이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한편 ‘인혁당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대책위원회’는 이날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진상규명위 조사를 통해 유신체제 하에서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조작된 사건임이 드러났다”며 “이번에 밝혀진 사실을 바탕으로 재심 청구를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진상규명위는 3선 개헌이 있었던 1969년 이후의 사건에 대해서만 조사하도록 규정한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에 따라 1차 인혁당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못했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인혁당 사건 일지▼
1964년 6월 3일 비상계엄령 선포
8월14일 중정, 1차 인혁당 사건 발표
1965년 9월5일 인혁당 관련자 26명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
9월21일 대법원, 6명에 징역 1년형 선고하고 6명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선고
1974년 4월25일 중정, 민청학련을 범죄단체로 규정하고 배후 에 인혁당 재건위를 지목
1975년 4월8일 대법원 판결. 사형 8명, 무기 7명, 징역 20년
4명, 징역 15년 4명
4월9일 8명 사형 집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