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스님이 차 한잔을 마시면서 격의없는 대화와 농담을 주고 받고 있다.사진제공 현진스님
공양을 마치고 차 한잔을 마시는 자리에서 한 스님이 농을 섞어 이렇게 말했다.
“승소(僧笑)가 적으니 승소(僧笑)가 적고, 객담(客談)이 많으니 객담(客談)이 많더라”
여기서 승소(僧笑)는 ‘국수’를 말하고 객담(客談)은 ‘술’을 뜻한다.
참 재기와 해학이 넘치는 표현이다.
절에서는 이처럼 본래 이름은 버리고 뜻을 빌려 쓰는 말이 많다. 일종의 은어(隱語)로 절에서만 통하는 암호 같은 말이다.
은어라고 해서 나쁜 뉘앙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팥죽을 스님들은 ‘지혜죽’이라고 한다. 법화경(法華經) 공부를 다 마치고 나면 책거리로 팥죽을 먹었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 그 어렵고 두꺼운 법화경을 떼었으니 이 정도면 출가 수행자로서 가치관과 지식이 갖추어졌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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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아욱은 누구나 좋아하는 나물인데 가을 아욱은 맛이 유난히 좋다. 그래서 가을에 끊인 아욱국은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는 말이 있어 일명 ‘몰래국’이다. 무슨 음식이던 몰래 몰래 먹는 기분은 국 한 그릇이라 하더라도 그 맛이 천하의 진국이나 다름없다.
우리 절 집의 은어가 일반화된 말은 역시 술을 뜻하는 ‘곡차’가 아닐까. 그렇지만 절 집에서는 이미 녹슬고 한물 간 단어다. 은어는 그 말이 지닌 나름의 익명성이 공개되면 그 역할은 은근히 김새기 마련이니까.
막 출가를 했을 무렵 선배 스님들이 마을을 다녀오고 나면 ‘안과’엘 들려왔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눈을 보면 병원을 다녀올 정도의 환자가 아니어서 의아했는 데 그 때 스님들이 말한 ‘안과’는 눈이 멀쩡한 사람이 가는 ‘극장’을 가리킨 말이었다.
삶은 계란을 ‘찐 감자’라고 말하고, 오징어를 ‘오 처사’라고 표현하는 스님들을 보면 가식과 위선이 느껴지기보다는 오히려 장난스럽다. 수행은 본래의 천진무구한 성품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해인사 포교국장 budda122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