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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이정희/대통령 사저 축소를

입력 | 2002-09-15 19:38:00


시작이 중요하듯 마무리 또한 중요하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할 때 국민의 기대는 자못 컸다.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정부로서 지역의 균형발전과 인사 탕평책을 통한 지역주의의 종식과 새로운 정치풍토를 만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더불어 서민들의 애환을 이해하고 감싸안는 정부를 그렸다. 김대중 정부의 지지세력은 계층적으로 소외되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의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채택한 노사정위원회도 노동자측이 김대중 대통령을 신뢰하였기 때문에 성사될 수 있었다. 적어도 김 대통령은 과거 정권들과 달리 노동자의 이익에 앞서 기업의 이익을 우선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감대가 노동계 내에 형성되어 있었다. 그것은 김 대통령이 수십년간 정치인으로서 지녀온 서민적 이미지 때문이었다.

▼서민적이미지 퇴색 안타까워▼

그러나 지난 4년여에 걸친 경제정책과 노동복지정책 등을 되돌아볼 때 김대중 정부가 친노동의 정책을 펼쳐온 것으로 평가하기 어렵고, 오히려 노동단체들은 김대중 정부의 친기업적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대통령의 서민적 이미지는 그리 손상되지 않았다. 셋째 아들이 살았다는 미국의 저택을 보면서, 둘째 아들이 근무했던 아태재단의 50평짜리 사무실의 호화로움을 보면서도 국민은 김 대통령이 서민과 가까이 있다는 마음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10월 중순 완공을 앞둔 김 대통령 사저가 최근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비치면서 ‘서민들과 함께하는’ 김 대통령의 이미지가 퇴색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서울 마포구 동교동 사저는 설계도에 의하면 연면적 199평에 8개의 방과 7개의 욕실, 3개의 거실, 5개의 창고, 엘리베이터, 실내정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이 밤에 누워 잘 자리는 8자 방 한 칸이면 충분하고 하루 2되의 식량이면 족하다(야와팔척 일식이승·夜臥八尺 日食二升)’는 옛 성현의 말이 새롭게 들린다. 덧붙여 임기말 레임덕 현상 때문인지 대통령 주변에서 따끔한 충언을 해줄 인물들은 이미 다 대통령을 떠난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다. 총리서리로 지명되었던 장상, 장대환씨의 부동산 취득과정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호화빌라에서 살다 이사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떠올리면서 신축 중인 동교동 김 대통령 사저의 모습이 멀게만 느껴진다. 태풍으로 엄청난 수해를 입은 수재민들이 컨테이너 박스에서 추석을 지내야 하는 상황과는 견주어 생각하기도 싫다. 5년 전 김영삼 대통령이 건평 100평의 사저를 개축할 때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아직도 국가에 갚아야 할 돈이 상당한 액수일 텐데 큰 저택에서 살고 있는 것은 어쩐 일인지 모르겠다. 집이 낡아 거처하기가 불편하여 국민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전임 대통령의 집을 수리해 주었다는 소식이 외신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바람인가.

동교동 사저의 골격 공사는 이미 끝나 외장 공사가 진행 중이고 다음달 중순이면 내장공사마저 끝난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사저 옆에 신축 중인 경호건물과 지하 3층, 지상 5층의 아태재단 건물을 포함한 소위 ‘DJ 타운’을 서민들과 함께하는 마당으로 꾸밀 것을 제안한다. 우선 경호건물의 건축비는 전액 청와대 경호실에서 부담하고 있기에 그 규모를 지금이라도 대폭 축소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은 퇴임 후 7년 동안 경호실의 책임 아래 경호를 받게 되어 있어 7년 후 경호실 직원들의 철수를 감안한다면 연면적 155평의 경호건물은 과도하다. 아태재단 또한 재단의 공익성을 고려하면 재단 건물의 몇 개 층은 주민과 전문가들을 위한 도서관으로 개방해 일반인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DJ 타운’이 웅장한 건물이나 화려한 치장으로 김 대통령을 찾는 사람이 주눅들게 하지 않아야 한다. 시골의 촌부도, 외딴섬의 어린이들도 마음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소박하고 정겨운 ‘DJ 타운’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인물평가는 퇴임후도 포함▼

퇴임 후 의혹과 구설수, 그리고 정쟁의 타깃에서 벗어나 국민과 함께 생활하는 김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다. 김대중 정부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5년간의 치적이 대상이 되지만 김대중 개인에 대한 평가는 퇴임 후의 행보까지도 그 대상에 포함된다. 같은 맥락에서 퇴임 후 행보를 준비하는 마무리 단계는 매우 중요하다. 퇴임 후 김 대통령이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 함께 고민하고 걱정하는 동교동 ‘DJ 타운’의 소박한 모습이 세계에 전해지는 것을 고집스럽게 꿈꾸고 싶다.

이정희 한국외국어대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