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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포커스]휴대폰 속 신용카드 긁는 대신 쏜다

입력 | 2002-09-16 18:18:00


5년 후인 2007년 9월. 고향 대구에서 추석을 쇠기 위해 서울에서 승용차를 몰고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한 K사 김 부장(40). 서울 톨게이트가 가까워지자 주섬주섬 휴대전화를 꺼낸다. 차창에 휴대전화를 댄 채 톨게이트를 통과하자 휴대전화에는 ‘통행료 결제준비’라는 메시지가 뜬다. 약 4시간 뒤, 그는 동대구 톨게이트를 같은 요령으로 통과한다. 휴대전화에 ‘서울∼동대구(295.5㎞) 1만2400원 결제’라는 메시지가 뜬다. 고향 집 앞 슈퍼마켓에서 과일을 사고 역시 휴대전화로 지불한다.

▽카드를 대체한다〓KTF SK텔레콤 LG텔레콤 등 이동통신 업체들이 ‘휴대전화 지불·결제사업’(모바일커머스·M커머스)을 본격화하고 있다.

KTF는 5월 M커머스 전용 단말기를 출시한 데 이어 이달 말 기능이 업그레이드된 ‘2차’ 단말기를 내놓는다. SK·LG텔레콤도 11월부터 본격적으로 가입자와 가맹점 모집에 나선다.

SK텔레콤 M파이낸스본부 김호성 과장은 “지난 1년간 직원 200명에게 M커머스 기능을 갖춘 휴대전화를 나눠주고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본사 지하아케이드 등에서 1년간 테스트해왔다”고 밝혔다.

M커머스란 휴대전화를 이용한 상거래. 카드의 기능을 휴대전화에 삽입해 놓고 카드로 지불할 때 플라스틱 카드 대신 휴대전화를 꺼내 지불하는 것을 말한다.

여러 회사의 카드를 휴대전화 한 개에 저장해 지갑을 날씬하게 유지할 수도 있으며 결제할 때 카드가 남의 손에 넘어가지 않는 등 보안성도 뛰어나 차세대 결제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휴대전화를 신용카드처럼 쓰려면 이동통신사에서 구입한 M커머스 전용 단말기와 신용카드사에서 발급한 IC칩이 있어야 한다. 신용카드사에 가입신청을 하면 우편으로 칩이 배달되고, 이 칩을 휴대전화 본체에 끼운다.

결제할 때는 카드의 마그네틱선으로 ‘긁는’ 대신 TV리모컨처럼 휴대전화의 적외선으로 ‘쏜다’. 휴대전화 속에 신용카드가 숨은 형태이며 청구는 카드요금과 통화요금이 따로 된다. 원할 경우 카드요금만 연체할 수도 있다.

▽달라지는 고객관리〓김 부장이 동대구 톨게이트를 통과한 것을 감지한 통신사가 그의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5개월 만의 고향 방문이군요. 추석선물로 저희 제휴사인 X마트에서 안마기를 준비하는 게 어떨까요? 두 달 전에 부친이 어깨 관절염 치료를 받았잖아요.’

이 같은 맞춤형 광고는 고객의 거래정보를 가진, 즉 칩을 소유한 사업자만이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통신사와 카드사들은 칩을 소유하기 위해 벌써부터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카드사들은 “기능상 기존 카드와 같으므로 칩은 당연히 카드사 소유”라고 말한다. 그러나 카드사에 비해 통신사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추세여서 결과는 미지수다.

▽통신사의 힘이 커지는 까닭은〓고객이 상점에서 휴대전화로 쏘면 가맹점의 결제단말기를 관리하는 부가가치통신(VAN)업체가 고객 정보를 카드사에 전달하고 카드사는 고객 확인을 한 뒤 지불을 승인한다. 기존 카드 거래에서는 10여개 VAN업체들과 신용카드사들이 그물망식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서비스해 왔다. 때문에 고객은 카드의 종류에 상관없이 신용거래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휴대전화 결제에서는 통신사들이 이 결제 네트워크와 별도로 VAN업체들을 직접 관리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VAN업체들이 ‘KTF파’와 최근 제휴를 맺은 ‘SK-LG파’로 나뉘는 것이다.

통신사들은 VAN업체에 대해 지분투자도 하고 카드사로부터 받는 제휴수수료도 재투자, 신용결제 네트워크를 장악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KTF M파이낸스사업팀 김성훈 팀장은 “이 추세대로라면 가맹점에서는 016·018전용 결제단말기(KTF파)와 011·019용 단말기(SK-LG파) 두 대를 설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SK텔레콤과 삼성 LG카드 하나은행 등이 제휴해 만든 ‘모네타’카드의 경우 금융사들은 SK텔레콤에 제휴수수료로 거래액의 1.1%를 지급하고 있다. 기존 수수료 0.2∼0.3%에 비하면 파격적인 조건. 카드사의 한 관계자는 “이는 시장의 헤게모니가 통신사 쪽으로 기울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최근 SK텔레콤 등이 M커머스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제휴할 카드사를 모집하는 과정에서 수수료 2.1%를 요구, 카드사들은 아연실색했다. 카드사들은 “주도권이 통신사로 넘어간 이상 누군가는 OK하지 않겠느냐”는 반응.

▽카드사는 들러리?〓불안감을 느낀 일부 카드사가 통신사에 대한 공동 대응방안을 찾고 있다. 중복투자를 막기 위해 정보통신부가 뒤늦게 중재에 나섰고, 통신사와 카드사 학계 인사가 참여한 가운데 기술 소위원회가 8월 말부터 3차례 열렸다. 그러나 “기술 표준이 다르다”는 통신사들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국민카드 상품개발팀 서원장 부장은 “카드사 통신사간, 양대 통신사간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M커머스가 ‘시티폰’과 같은 사산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M커머스 사용고객은 약 1만명, M커머스 결제단말기를 설치한 가맹점은 2만여곳. 신용카드처럼 M커머스를 편안하게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가맹점 수는 약 200만곳이다.나성엽기자 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