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금융거래’ ‘경영자’ 등의 단어를 ‘북한’과 함께 떠올리기는 다소 어색하다.
최세웅(崔世雄·41·사진) 에스엔뱅크 사장은 이 단어들을 모두 떠올리게 하는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17일 오전 10시반, 최 사장은 서울은행이 선보인 ‘사이버 환전시장’ 사이트에서 거래 상황을 보고 있었다. 개인끼리 인터넷상에서 원화와 달러화 거래를 할 수 있는 전산시스템인 IBS를 개발한 곳이 바로 에스엔뱅크.
개장 1시간 만에 1만달러어치가 거래됐다. 기존의 외환시장이 ‘기관’끼리 거래하는 도매형이었다면 ‘소매 외환시장’이 열린 셈. 현재는 원화와 달러화만 거래되지만 유로화 위안화 금 등 거래품목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벤처사업가로 변신한 최세웅 전 북한 조선통일발전은행 부총재보(왼쪽)가 1995년 가족과 함께 귀순할 당시 사진기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 동아일보 자료사진
최 사장은 북한 노동당 재경경리부장(한국의 재정경제부장관에 해당)을 지낸 최희벽씨의 차남.
고위층 인사가 모여 사는 평양 창광동에 살았으며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했다.
형과 남동생이 군에 몸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둘째는 금융을 가르쳐 경제분야에서 일하게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부친에게 제안한 것이 외환거래와 인연을 맺은 계기. 오스트리아 은행에서 84년부터 2년간 연수를 받은 후 줄곧 국제금융 업무를 맡았다.
외환거래가 대금결제 등에 주로 필요한 한국과 달리 북한에서는 외환거래 자체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북한 외환 딜러의 시장 예측이나 거래기법 수준은 세계적이라는 것이 최 사장의 설명.
그는 주로 런던에 거주하며 북한의 대성은행과 영국 기업이 합작한 외환거래 전문업체 대표를 5년간 지냈고 조선통일발전은행 부총재보를 맡던 중 95년 부인, 두 자녀와 함께 귀순했다. 자본주의 사회에 오래 살았던 데다, 부친의 급작스러운 좌천 등으로 체제에 대한 회의가 들었기 때문.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한다”는 최 사장은 귀순 이후 북에 있는 다른 가족들의 소식은 아는 바가 없다.
그는 해외에서는 두 명씩 함께 다니도록 돼 있는 규정도 적용받지 않았고 부하 직원 중에 외국인도 많아 귀순 전 ‘자본주의 경험’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남으로 온지 7년”이라면서도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한 셈”이라고 말한다.
한국에 와서는 금융결제원·나라종금 등에서 외환중개업무를 하다가 2000년 에스엔뱅크의 전신인 벤처기업 엔포렉스를 설립했다. 아직 적자지만 내년 1월경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다고 한다.
부인 신영희씨는 85년 남북예술단 교환공연 때 서울에서 공연하기도 했던 유명 무용가 출신.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