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스스로 술 취했다고 얘기하는 사람 봤습니까? 알코올 중독자도 스스로 중독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치료하는 게 중요하죠.”
건양대 정신과 기선완(奇宣玩·41·사진) 교수는 알코올 중독자들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그는 2000년 병원 개원과 동시에 알코올 중독자 40여명을 회원으로 ‘알자회(알코올 중독자 자존심 회복 모임)’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알자회’ 회원들은 주 1회 만나 서로의 음주 경험과 폐단, 단주(斷酒) 방법 등을 논의하며 서로 치료를 도와준다.
일정 기간 중 단 한 방울의 술도 마시지 않은 단주자에게는 3개월, 1년, 2년, 5년 단위로 축하행사를 열어 준다.
기 교수는 최근 알코올 중독의 효과적인 치료를 위한 보고서 ‘한국형 동기강화치료 프로그램 모형’을 발표해 주목받고 있다.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노인숙 책임연구원과 공동으로 개발한 이 프로그램은 인간의 심리적 상태를 조정하는 자연치유 방법에 기초를 둔 국내 최초의 모형.
종전의 치료 방법이 환자들에게 불필요한 저항과 자존심을 건드린 것에 비하면 이 방법은 환자가 중독 행동에서 완치되어 가는 과정을 스스로 인식하고 자신감을 갖도록 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번 프로그램이 통원 치료가 가능한데다 과거 1년 단위로 진행되던 치료를 90일 단축을 목표로 하는 등 시간과 경비 절감을 가져올 것으로 평가했다.
기 교수는 “미국의 경우 알코올 중독 치료에 소요되는 비용이 연간 60억달러(약 7조2000억원)에 이르고 우리나라도 최근 사회 경제적 손실이 17조원을 웃돌고 있다”며 “중독자들의 몸과 마음을 황폐화시키고 이 때문에 주위에서 고통받는 가족들의 평화를 위해 이 연구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대전〓이기진기자 doyo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