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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황호택/생모(生母)

입력 | 2002-09-18 18:35:00


어머니는 가난 때문에 딸을 부양할 수 없게 되자 딸의 몸에 평생 남을 표시를 하기 위해 오른손 집게손가락에 먹물을 넣어 보육원 앞에 버렸다. 세 살 때 네덜란드로 건너간 입양아는 성장하면서 출생의 비밀을 푸는데 손가락의 먹물 문신이 어떤 단서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원미숙씨(31·네덜란드명 완다 미에드마)가 한국에서 생모를 찾게되기까지에는 손가락 문신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두 달 전 KBS ‘아침마당’ 프로그램에서 생모는 28년 전에 버렸던 딸을 부둥켜안고 통곡을 했고 뿌리찾기에 성공한 원씨는 말이 통하지 않는 생모 앞에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세계 최대의 고아 수출국 한국에는 해마다 수많은 해외 입양아들이 생물학적인 부모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다. 아침마당 제작진에 따르면 입양아들 중에는 자신을 버린 부모에 대한 원망을 사춘기까지 지니고 있었다고 털어놓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부모 쪽에서 백방으로 수소문해 자식을 찾아냈는데도 ‘핏줄을 버린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다’며 만나지 않는 사례도 더러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결혼기에 이르거나 가정을 이루어 아이를 낳고 나면 육친을 용서하고 뿌리찾기에 나선다.

▷혈족 관념이 우리보다 약한 미국 사회에서는 양부모를 진짜 부모라고 생각하고 생물학적 부모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사는 청소년들이 많다. 그러나 장년이 된 후 가족의 병력을 알아내 건강관리를 하기 위해 생물학적 부모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유전학에 따르면 지능이나 성격은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비중이 높은 데 비해 체질은 꽤 많은 부분을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 암 알코올중독 등의 질병에는 유전적 소인이 어느 정도 작용하고 고혈압 당뇨 비만 대머리 등은 대물림하는 비율이 높다.

▷정몽준 의원이 대통령 출마 선언을 하는 기자회견장에서 생모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생모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지금은 적서(嫡庶)를 차별하던 조선시대도 아니고 정 의원의 출생에 관해 공격을 하는 선거운동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가 될 각오를 했을 때는 출생의 비밀이 공론에 부쳐질 각오를 했어야 한다. 아는 데까지 솔직하게 밝히고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일, 책임질 필요가 없는 일에 대해 이해를 구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래도 정 의원은 한국 경제의 거목을 아버지로 두고 있지 않는가.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