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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할리우드는]커가는 영화, 작아지는 스타

입력 | 2002-09-23 18:03:00


《산업화의 한 복판에 들어선 한국 영화 뿐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든, 미국의 할리우드는 질시와 극복의 대상이다. 세계 영화 산업의 메카인 할리우드에서는 요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로욜라 매리마운트 대학에서 영화 산업으로 MBA를 취득하고 최근 귀국한 김희경 기자가 할리우드의 뉴 트렌드와 영화 제작 시스템을 10회에 걸쳐 소개한다. 》

“당신은 노마 데스몬드 아닌가요? 무성영화 시절의 스타였잖아요.”

“나는 여전히 스타야. 영화가 점점 초라해질 뿐이지.”

(영화 ‘선셋대로’에서 퇴락한 스타 노마가 자신을 알아보는 시나리오 작가에게 거만하게 대답하는 장면).

스타는 신화속 영웅처럼 신적인 존재다. 1910년대 메리 픽포드가 ‘세계의 피앙세’로 불리며 최초의 스타 파워를 과시한 이래 스타 시스템은 할리우드를 지탱해온 버팀목이었다.

그러나 방송 신문 인터넷 등을 아우르는 거대 미디어 기업들이 영화사들을 집어삼킨 2000년대 할리우드에서는 ‘선셋대로’에서 노마가 했던 말과 상반된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영화는 점점 커져가는 반면 스타들은 초라해져가고 있는 것.

#1 스타는 여전히 힘이 센가?

스타들을 주로 다루던 미국 잡지 ‘토크’가 올해 초 폐간될 때, 경제일간지 월스트리트 저널은 “스타 문화가 사양길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슈퍼 스타에만 의존하는 미디어는 이제 더 이상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 2000만 달러 이상의 거액 출연료를 받는 미국의 스타는 23명. 그러나 2001년의 미국 흥행 ‘톱 10’ 영화 가운데 이 거액 스타들이 출연한 영화는 1편, 2002년에는 4편에 불과하다.

올해 봄 개봉된 ‘하트의 전쟁’의 제작비는 7000만 달러. 이중 1/3을 주연 배우 브루스 윌리스가 가져갔으나 미국 국내 흥행 수입은 1910만 달러에 불과했다.

지난달 개봉된 에디 머피의 ‘플루토 내쉬의 모험’도 제작비 1억 달러중 에디 머피의 몫이 1/5에 달했지만 흥행수입은 430만 달러에 그쳤다. 짐 캐리, 존 트라볼타, 아널드 슈워제네거 등도 전면에 나섰으나 출연 영화를 구원하지 못한 스타들이다.

# 2 이제는 캐릭터가 스타

올해 여름 성수기 때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를 휩쓴 영화는 ‘스파이더 맨’과 ‘스타워즈: 에피소드 2’였다. 두 영화의 주연은 각각 토비 맥과이어와 헤이든 크리스텐슨. 누가 봐도 스타라고 하기 어렵다. ‘스파이더 맨’에서 토비 맥과이어의 출연료는 불과 400만 달러. 2001년의 흥행작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반지의 제왕’에서도 스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 배우가 아니라 해리 포터, 스파이더 맨, 아나킨 스카이워커(‘스타워즈’), 말하는 개(‘스쿠비두’), 녹색 괴물(‘슈렉’)같은 캐릭터가 스타의 위상을 차지하는 시대가 됐다. 유니버설 영화사가 2003년을 겨냥해 준비하는 야심찬 대작 ‘헐크’의 주연배우 에릭 바나도 지금까지 주연을 맡아본 적이 없는 ‘무명’ 배우다.이 영화 역시 주연 배우보다 헐크 캐릭터가 전면에 나온다.

‘스파이더 맨’등의 원작 판권을 보유하고 있는 마블 스튜디오의 대표 아비 아라드는 “오랜 세월 사랑받아온 스파이더 맨이나 헐크는 이제 톰 크루즈나 톰 행크스 못지 않은 스타들이다. 제대로 된 스토리만 뒷받침되면 이들은 절대로 질리지 않는, 정상의 롱런 스타들”이라고 말했다.

# 3 동요하는 스타 시스템

스타 시스템의 변화 요인 중에는 거대 미디어 그룹에 편입된 영화사들의 공세적 ‘프랜차이즈’ 전략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처럼 시리즈로 기획된 프랜차이즈 영화에서는 살냄새나는 스타보다 지속적 상징성을 지닌 캐릭터가 더 중요하다. 해리 포터를 누가 연기하느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미이라’ ‘스파이더 맨’같은 프랜차이즈 영화에 전체 흥행 수입의 1/3 이상을 가져가는 고액 스타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은 “대중문화의 리더로서 영화의 역할이 쇠퇴할지언정, 시대에 의해 소비되는 스타는 계속된다”고 했다. 그러면 이제 시대가 요구하는 스타는 배우가 아니라 캐릭터로 바뀌는 것일까. 할리우드의 스타 문화는 전례없는 변화를 겪고 있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