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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2002]SK R&D센터 신약개발팀 성공확률 0.02%

입력 | 2002-09-23 18:46:00

신약 개발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대덕 SK R&D센터 의약개발팀 연구원들이 신약 후보 물질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화학물질을 조합하고 있다. 대전〓박영대기자 sannae@donga.com



대전 유성구 대덕연구단지에 자리잡은 ㈜SK의 R&D센터. 이곳 의약개발팀 실험실에는 쥐를 물에 빠뜨린 뒤 반응을 살펴보는 실험이 한창 진행중이다. 우울증 치료제 개발 모델이라고 한다.

생쥐 8마리를 물에 빠뜨리고 6분 동안 반응을 관찰하는 방식. 처음 2분은 모든 쥐가 살려고 바동거린다. 2분이 지나고 나면 항(抗) 우울증 약물을 투여한 쥐는 계속 바동거리는 반면 처방하지 않은 생쥐는 자포자기 상태가 된다는 것.

불을 끈 옆방에선 한 연구원이 불안증 치료제 실험을 하고 있다. 밝은 상자와 어두운 상자가 연결돼 있었고 생쥐가 한 마리 있다. 쥐는 어두운 곳을 좋아하지만 불안증 치료제 약물을 주입한 생쥐는 밝은 곳에 자주 나타난다.

“이젠 쥐만 보면 우울한지, 불안한지 알 수 있습니다.” 동물 실험 베테랑 이한주 연구원의 말이다.

이렇게 찾아낸 5000여개의 신약 후보 물질 가운데 ‘신약’으로 햇빛을 보는 건 고작 1개다. 1개의 신약을 위해 12∼15년 동안 무려 3000억∼5000억원의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 붓기도 한다.

SK 신약 개발의 요람인 이곳에서 34명의 연구인력이 연구와 실험을 반복하고 있다.

“매번 ‘이번엔 정말 신약일거야’라며 자기 최면에 빠집니다.”(구본철 의약개발팀장)

신약 탄생의 과정은 험난하다. 먼저 신약 후보 물질의 탐색 및 발굴 과정. 약이 될 만한 화학물질은 죄다 끌어내 이리저리 섞어 약효가 가장 뛰어난 화학물질을 찾는다. 신약개발팀 실험실 벽 한쪽에는 이런 후보물질이 들어있는 집게손가락 크기의 약병들이 수백개 쌓여 있다. 그 다음은 전임상(Pre-Clinical) 단계. 동물(쥐→토끼→개 또는 원숭이)을 대상으로 약효 및 독성을 테스트한다. 전임상을 무사히 통과하면 사람에게 ‘약발’을 시험하는 임상시험(Clinical Trial)을 한다. 임상시험은 테스트 환자군에 따라 3단계로 나뉜다. 임상단계마다 실패율이 80%를 웃돈다.

이런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난 신약 후보 물질은 미국 식품의약청(FDA)의 신약 승인을 얻어 세상에 나온다. SK 바이오팜사업부 의약개발팀의 역할은 전임상 단계까지. 임상시험은 주로 미국 의약개발센터에서 한다.

SK의 신약개발은 중추신경계(CNS)에 특화돼 있다. 간질 정신분열증 우울증 등 뇌 분비물의 균형이 깨진 상태에서 발생하는 질병을 치료하는 신약이다. SK는 지금까지 간질치료제(YKP509, 99년)와 우울증치료제(YKP10A, 2000년)를 미국 존슨 앤드 존슨사에 기술 판매했다. 모두 임상 1단계를 끝내고 미국 제약사에 바통을 넘겼다. 다음달엔 몇 가지 신약 후보물질의 임상시험을 위해 미국 FDA에 연구용 신약 승인 신청을 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개발된 한국의 신약은 모두 국내용.

구본철 팀장은 “신약 개발은 후보 물질 발굴에서부터 마케팅까지 8, 9단계에 이르는 과정으로 개별기업이 모두 소화하기는 힘들다”며 “대박을 터뜨리기 위해선 미국 시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SK바이오팜 사업부 최용문 상무는 “신약 개발은 연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시장성과 상품성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며 “상품화가 가능한 신약 후보 물질을 몇 개나 보유하고 있느냐가 이 분야의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대전〓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