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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기자의 현장칼럼]청각장애인야구팀 충주성심학교야구부

입력 | 2002-09-26 16:25:00

충주성심학교 야구부 김인태 감독(앞줄 왼쪽)이 수화를 하는 임영규 체육교사(앞줄 오른쪽)의 도움을 받아 청각장애 야구부원들에게 타격요령을 설명하고 있다. 충주=전영한기자



《청각장애 특수학교인 충북 충주성심학교(교장 김신자 수녀)에 9일 야구부가 창단됐다. 국내 최초의 청각장애인 야구단인데 그 포부가 간단치 않다. 단지 장애학생들의 신체능력개발이나 인성교육이 목적이 아니라 내년에 일반 고교 야구부와 정식으로 한판 붙어 보려고 한다. 선수들은 평일 오후 학교 옆 재활원에서 받아온 기술훈련도 다 접고 월 화 목 금요일에는 야구장으로 몰려간다. 어차피 목공 도예 양재일 배워봐야 장애인이라는 억울한 이유로 취업도 잘 안 된다는데, 푸른 하늘로 멋진 홈런볼이나 날려 볼까.》

충북 충주시 칠금동 탄금대 야구장.

18일 한낮의 뜨거운 가을 볕 아래 충주성심학교의 야구부원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에 여념이 없었다.

“최소한 10초 간격으로 날 한 번씩은 꼭 쳐다봐야 해. 명심해!”

김인태 감독이 말을 하자 코치 역할을 맡고 있는 임영규 체육교사가 옆에 서서 수화로 옮긴다. 청각장애인이 모여 있는 곳은 유리벽 속처럼 조용하긴 해도 어딘가 산만한 느낌이다. 이들의 주의를 한데 모으는 일이 쉽지 않다. 귀가 들리지 않는 학생들이라 등을 돌리고 있으면 아무리 가까이서 소리쳐 불러봐야 소용없다. 그런 학생이 한두 명도 아니고 18명이나 되니 감독의 간단한 지시 하나라도 야구부원 전원에게 전달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체력은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

중고교 야구선수를 거쳐 한때 제일은행 실업야구단에서 활동한 김 감독은 야구팀이란 감독의 말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조직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야구팀에서는 일단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의사를 전달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등을 두드릴 수도 없는 일이고…. 그래서 김 감독은 ‘첫째도 집중, 둘째도 집중’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야구부원들은 운동장을 몇 바퀴 돈 뒤 곧 체력단련을 겸한 스피드 러닝 훈련에 들어간다.

“무릎을 높이 들어! 옆으로 말고 똑바로 들어!”

김 감독이 오른손 세 손가락을 굽혀 무언가 표시를 하자 학생들이 제자리에서 잰 발로 30회가량 뛰더니 두 베이스 사이를 달리는 정도의 거리를 전력 질주하는 동작을 반복한다. 전날 훈련에서보다 왕복 거리가 줄어들었다. 김 감독은 전날 전력 질주 거리를 좌우익수 위치에서 중견수 위치까지 뛰어가는 거리로 늘렸다가 3명이 다리근육 통증을 호소하는 바람에 이날 다시 베이스 러닝하는 정도의 거리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감각기관을 꼽으라면 단연 눈이다. 눈이 정상인 청각장애인은 시각장애인과는 달리 비교적 자유롭게 운동을 할 수 있다. 그래도 시청각이 고루 잘 발달한 일반 학생들에 비해서는 운동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고 체력 차이가 많이 난다.

“내년 고교 야구대회 첫 참가를 목표로 하고 있는 우리 야구부는 현재 중학교 3학년이 주축이 돼 있지만 실제 체력은 일반 초등학교 4, 5학년 수준에 가까운 것 같다”고 김 감독은 말한다.

다음은 캐치 볼 훈련. 학생들이 둘씩 짝을 지어 공을 주고 받는 훈련이다. 약 20m 거리를 두고 서로 공을 주고받는 데도 공이 상대편에게 제대로 날아가지 못하거나 공이 정확히 와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처음 야구를 하는 ‘초짜’들이 모여 훈련을 시작한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의 도입부를 보는 느낌이다.

임 교사의 말을 들으면 사정이 조금 이해가 된다.

“충주성심학교 중고등학생이 전체 115명. 여학생 56명을 빼면 남학생은 59명이다. 또 내년 초 학교를 졸업하는 고등학교 3학년과 나이 어린 중학교 1학년을 빼면 선발대상자는 33명에 불과했다. 이 중 18명을 뽑았으니 대략 남학생 둘 중 하나는 뽑힌 셈이다. 일반 중고등학교에서 한 학년 수백명 중 서너명을 선수로 뽑는 것과는 애초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다.”

물론 공을 잘 던지고 받는 학생도 간간이 눈에 띈다. 현재 투수 후보에 올라 있는 편수현 학생(고1)은 체육시간에 소프트볼을 해본 것이 고작이지만 공을 던지는 순간 왼발과 오른 팔의 상하 균형이 잘 맞는 좋은 폼을 갖고 있다. 또 포수 후보에 올라 있는 조장훈 학생(중3)은 체육시간에 축구 골키퍼를 주로 맡아 본 경험 때문인지 공에 대한 두려움이 적어 땅에 튀긴 어려운 볼도 잘 받아낸다.

이 학교 조일연 교감은 “전국의 각 청각장애학교 학부모들이 우리 의도에 공감해 야구를 좋아하는 자녀를 우리 학교로 전학보내 준다면 조만간 좀 더 좋은 선수들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공포의 외인구단’ 보는듯

마지막은 배팅 훈련. 김 감독은 다시 한번 타격 요령을 자세히 설명하고 임 교사는 또 열심히 수화로 옮긴다. “방망이는 상체가 아니라 하체로 휘두르는 거야. 너희들 치는 것을 보면 하체는 안 돌고 상체만 움직여. 그런 식으로는 몸쪽으로 오는 공을 절대 못 쳐. 하체가 중심을 이동하면서 상체가 따라 나가야 해. 그리고 턱은 타격 전에 왼쪽 어깨 위에 놓였다가 타격 후엔 오른쪽 어깨 위에 놓여 있어야 해. 너희들은 고개가 따라 돌아 가버려. 턱은 절대 움직이면 안 돼. 고개가 돌아가면 공이 맞는 순간을 볼 수 없어.”

김 감독은 한 동작 한 동작을 일일이 시범을 통해 보여준다. 청각장애인은 시각장애인보다 운동능력은 앞서지만 이해력은 크게 떨어진다. 이해력은 형상(그것이 글자이든 수화이든 간에)중심적이라기보다는 음성중심적인 모양이다. 시각장애인 중에는 일반인을 능가하는 뛰어난 학자도 가끔 나타나지만 청각장애인 중에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청각장애인 고등학생의 이해력은 일반 초등학교 2, 3학년의 이해력과 비슷하다”고 조 교감은 말한다. 그러나 눈썰미 하나는 끝내주는게 청각장애인이다. 듣고 말하지 못하는 대신 눈은 미세한 움직임도 놓치지 않는다. 복잡한 타격 요령을 다 이해하진 못해도 감독의 시범을 보고 잘 따라 한다.

■내년 전국대회 꼭 출전 ‘당찬 목표’

어렵게 야구부 창단의 산파역할을 한 사람은 조 교감이다. 그 자신 중학생 시절 야구선수로 활동했고 교감이 되기 전에 이 학교 체육교사로 아마추어 야구를 죽 해 왔다. 충북 지역 아마추어 야구단들을 순회 지도하던 김 감독을 만난 것도 그런 인연 덕분이다.

조 교감은 축구부가 아니라 야구부를 창단한 것에 대해 “축구시합 중 선수가 반칙을 범해 심판이 호루라기를 울렸는데도 선수가 소리를 듣지 못하고 계속 경기를 진행한다면 시합이 이상해지지 않겠느냐”고 되묻는다. 반면 야구는 심판의 스트라이크, 볼, 아웃, 세이프 판정이 바로 전광판을 통해 확인될 수 있는 경기다. 또 축구는 감독이 운동장에서 소리를 지르며 작전을 지시하지만 야구는 감독이 사인으로 작전을 지시한다. 사인은 수화와 비슷하니까 시합 중 감독과 선수의 의사소통은 청각장애인 야구팀이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다.

물론 불리한 점도 많다. 야구의 수비는 타격 순간을 보지 못해도 타격음을 듣고 순간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타격음을 듣지 못한 상황에서 날아오는 공을 보지 못한다면 심한 부상을 할 염려가 있다. 또 야구의 규칙은 축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복잡하고 까다로운데 이해력이 떨어지는 청각장애인들이 민첩하게 기지를 발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김 감독은 “그래서 오히려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 야구팀”이라고 생각한다.

충주성심학교 야구부는 전국 고등학교 야구부 중 57번째 팀이다. 현재 충북지역에는 세광고와 청주기계공고 등 2개팀이 있다. 두 팀 다 강팀이어서 황금사자기 청룡기 등과 같이 지역예선을 거치는 대회에는 충주성심학교의 진출이 당분간 어렵다. 첫 목표는 예선없이 바로 본선이 열리는 유일한 전국 고교야구대회인 내년 봉황기 출전에 두고 있다.

이들이 과연 정식대회에서 1승을 거두는 날이 올 것인가. 현재 야구부의 주축인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3년후 쯤에는 혹시 가능할까. 청주 세광고 졸업생인 한화 이글스의 송진우 선수는 창단식에 참석해 이런 말을 했다.

“세광고가 창단해서 첫 우승을 거두기까지 무려 27년이 걸렸어요. 여러분도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