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성산 일출봉 근처의 초지를 자전거로 달리는 신혼 부부 손정수(맨앞) 한미숙씨(앞에서 두번째)와 대학생들. 이곳 근처에서 자전거를 배에 싣고 우도로 들어가 3시간 정도에 일주할 수 있다. 제주〓전영한기자
“제주도를 자전거로 즐겨 보자.”
곳곳에 비경을 품고 있는 제주도를 자전거로 하이킹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미 100여개의 자전거 대여점들이 제주도 곳곳에 들어섰다. 자전거 도로와 노상 보관소가 증설되고 있다. 북제주군의 경우 2005년까지 애월∼하귀 등에 5개 노선 64.5㎞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 계획이다.
철인 3종 경기 선수인 제주관우회 현기창 회장(35·자영업)은 “가을 신혼부부들에게 ‘오후 한나절 자전거로 제주를 즐겨 보라’고 권한다”며 “철인경기를 위해 온 외국인들은 자전거 코스에 감탄한다”고 말했다.
●바닷바람 맞으며 달리는 자전거길
자전거를 타고 시속 15㎞로 3박4일간 달리면 제주도를 일주할 수 있다. 전문가들마다 3∼8개 코스로 나눠 추천한다. 현 회장은 호텔이 밀집해 있는 중문에서 제주 남서쪽 절경인 송악산까지의 한나절 코스를 추천했다. 왕복 45㎞. 쉬엄쉬엄 사진 촬영과 구경을 곁들이면 5시간 짜리 코스다. 송악산쪽으로 갈수록 시야가 트여 경관이 좋아진다는 게 매력이다.
제주도 서쪽 수월봉 아래의 자전거 전용 해안도로(사진 위). 제주도 남서쪽 산방산에서 송악산 가는 해안 도로(아래).
중문단지를 나서면 곧바로 높다란 종려나무들이 늘어선 700m 구간의 시원한 내리막이 나타난다. 여미지 식물원도 여기에 있다. 신혼부부들이 난감해 하는 코스는 내리막길 끝의 한국관광공사 풍차 다음에서 좌회전한 뒤부터. 서귀포호텔 입구까지 3㎞ 구간의 오르막길이 인내심을 테스트하듯 이어진다. 현무암 돌담으로 둘러싸인 밭들, 코스모스, 종려나무 등 주위 풍경이 위로가 돼 준다.
이후 화순으로 접어들면 우레탄이 깔린 자전거 전용도로를 달리게 된다. 한적할 뿐만 아니라 탁 트인 남제주 해안에서 귤밭을 거쳐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신선하다. 이 길 한쪽에 조각공원이 나오고 남서쪽의 우람한 산방산을 보며 내리막길을 탈 수 있다.
육면체 모양의 산방산은 거대한 절벽과 거기 피어난 식물들, 바다와 구름과 햇볕 등으로 이국적인 느낌을 던지는 명소다. 산 발치에 광명사가 있으며 근처에는 하멜기념비, 용머리 등이 있다. 남동쪽의 순상 화산인 송악산과 박쥐가 날개를 편 듯한 동쪽의 담산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부터 송악산에 이르는 해안도로는 자전거 하이킹의 별미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 탁 트인 수평선과 비릿한 바닷바람, 잔잔한 밀물 소리, 금세라도 몽상에 빠져들 듯 한적한 길이 펼쳐져 있다. 송악산 발치의 선착장에선 국토 최남단인 마라도로 향하는 배에 오를 수 있다. 송악산 중턱의 도로에서 멀리 U자형 해안과 산방산, 수평선을 배경으로 촬영하면 오래 기억될 기념 사진을 남길 수 있다.
한편 산방산에서 해안도로로 내려오는 길 끝에는 제주 연안에서 많이 잡히는 다금바리 회를 전문으로 하는 ‘진미식당’(064-794-3639)이 있다. 현기창 회장은 “드물게 보는 별미라서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 등이 현직에 있을 때 제주에 오면 빠짐 없이 들른 곳”이라고 추천했다.
●우도를 자전거로 달린다
7일 결혼한 손정수(28·회사원) 한미숙씨(28) 부부는 신혼여행 때 동쪽의 세화-하도리-우도-종달리-오조리-성산-섭지코지-신양리-신산리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자전거로 달렸다. 성산 일출봉과 해변의 오름(산)들, 섭지코지(코끝처럼 바다로 불쑥 튀어나온 좁다란 땅이라는 제주도 사투리)의 초지에서 말들이 풀을 뜯는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코스다. 손씨는 “성산 선착장에서 대당 500원씩만 내면 자전거를 가지고 우도로 들어갈 수 있다”며 “우도에서 다시 성산으로 나가고 싶지 않으면 오후 3시에 출항하는 종달리행 배를 타면 된다”고 말했다.
제주도 서남쪽 일과리로부터 수월봉-절부암-신창리로 이어지는 해안도로 코스도 추천할 만하다. 특히 수월봉에서 여섯 개의 섬으로 이뤄진 차귀도 앞바다를 내려다보는 풍광이 수려하다. 억새밭과 등대, 무인도, 배가 낸 물길 등이 그림처럼 어우러진다. 수월봉에서 바닷가로 바싹 나와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약 2㎞의 코스는 오로지 자전거만 달릴 수 있는 포장도로다.
제주도 북서쪽 애월에서 하귀리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풀이 난 절벽을 따라 굽이 도는 코스인데, 가끔 눈에 환하게 들어오는 옥빛 바다가 좋다. 하귀리에서 좀 더 달려나가 이호해수욕장을 넘어서면 용두암을 거쳐 관덕정까지 이어지는 또다른 해안도로가 나온다.
●자전거 ‘배달주문’도 가능
제주시나 서귀포, 중문단지를 기점으로 달릴 때는 근처의 자전거 대여점에서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 이들 외의 장소를 기점으로 한다면 자전거 대여점에 자전거를 ‘배달’해 달라고 할 수 있다. 손씨 부부는 제주시의 ‘자전거 세상’(017-693-3777)에 주문해 하도리에서 자전거를 배달받았다. 왕복 배달료는 3만원. 1일 대여료는 대부분 5000원이다. 호텔에서 빌리는 데는 하루 1만5000원 수준.
출발 전에는 수건, 챙이 넓은 모자, 자외선차단제, 시계, 구급용품, 카메라, 수통, 지도 등을 챙겨야 한다.
코스는 취향에 따라 아기자기하게 정할 수 있다. 자전거 대여점에 문의하거나 인터넷 홈페이지들(주요 검색어 ‘제주도&자전거’를 입력)을 참조하면 된다. 현회장은 “제주시에서 출발해 일주한다면 일단 시계 방향으로 도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제주가 지형적으로 동쪽이 서쪽보다 높아서 어려운 코스를 먼저 시작하는 것이 좋다는 것. 또한 제주 북부에는 서풍이, 남부에는 동풍이 우세해 바람을 등지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과감하게 산쪽으로 코스를 잡아도 좋다. 손씨 부부는 제주도 북동쪽 하도리에서 출발해 한라산쪽 비자림까지 올라갔다가 산록도로를 타고 제주도 남동쪽 민속박물관으로 향하는 코스를 달려봤다. 손씨는 “내리막길에서 속력이 50㎞ 가까이 올라가 조심해야 했다”며 “오를 때 힘들었다면 내려갈 때 좋은 길이 나타난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제주〓권기태기자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