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사고를 바탕으로 한 액션 영화 ‘K-19’
구 소련이 망하니까 이런 일도 벌어진다.
영화 속에서 구 소련을 ‘악의 축’으로 묘사해온 할리우드가 새 영화 ‘K-19’에서는 구 소련을 동정한다. ‘에어포스 원’에서 미국식 영웅의 상징이었던 해리슨 포드가 이 영화에서는 세계 3차 대전의 위기를 막은 구 소련의 영웅이 됐다.
‘K-19’는 30년간 비밀에 쌓여있다가 소련이 무너진 뒤 공개되었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냉전이 고조된 1961년, 소련은 최초의 핵잠수함 ‘K-19’호를 개발한다. 잠수함 건조 과정에서부터 사상자가 속출해 ‘과부 제조기’라는 별칭까지 붙을 정도이지만, 안전장치의 결함을 지적한 함장 미하일(리암 니슨)은 부함장으로 강등된다. 소련은 미국을 견제한다는 일념 하에 충성심이 강한 알렉세이(해리슨 포드)를 새 함장으로 임명하고 ‘K-19’호의 출항을 강행한다.
이 영화의 소재가 된 실화 자체가 극적이다. 나토 기지 근처까지 출항한 ‘K-19’호는 원자로 냉각 시스템에 구멍이 생겨 폭발할 지도 모르는 위기에 부닥친다. 냉전의 한 중심축인 나토 기지 근처에서 발생하는 핵잠수함 폭발은 세계 3차 대전의 방아쇠나 마찬가지. 이를 막을 유일한 방법은 방사능이 유출되는 냉각 시스템에 대원들이 직접 들어가 구멍을 수리하는 것 뿐이다.
대원들이 차례로 원자로에 들어가고, 이들이 죽음의 공포 앞에서 발버둥치는 장면부터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그러나 이 영화는 하이라이트에 이르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한 탓에, 이 대목에서 새로운 영화가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현란한 테크닉을 구사하기 어려운 공간의 한계를 안고 출발한 잠수함 영화에서는 드라마적 구성이 더 중요하게 부각된다. 밀폐 공간에서 극한 상황에 몰린 등장 인물들과 그들의 갈등에 대한 묘사가 잠수함 영화의 핵심이다. 잠수함 영화의 고전인 ‘다스 보트’가 성공한 것이 그 지점이다. ‘K-19’에서는 ‘투 톱’인 해리슨 포드와 리암 니슨이 드라마적 갈등 구조의 두 축을 맡았다. 그러나 ‘투 톱’의 캐릭터보다 원자로 수리를 위해 목숨을 거는 대원들과 그게 실제 상황이었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긴장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올해 환갑인 해리슨 포드가 영화의 전면에 등장하지만, 그보다는 함장과 충돌하면서도 끝까지 그를 보좌하는 리암 니슨의 연기가 더 인상적이다.
감독은 ‘폭풍 속으로’를 만든 캐슬린 비글로우. 미미 레더 감독과 함께 액션 영화를 만드는 몇 안되는 여성 감독가운데 한 명이다. 원제 ‘K-19: The Widowmaker’. 12세이상 관람가. 10월 3일 개봉.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