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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산업]김지룡/'아리송한 상품명'이 눈길 끈다

입력 | 2002-09-26 18:44:00


일본에 ‘5개 국어 사전’이라는 것이 있다. 같은 의미를 지니는 일본어,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단어를 5개 열로 늘어놓은 아주 간단한 형식의 사전이다.

문법 설명이나 용례 같은 보통 사전에 나오는 내용은 일절 없다. 그저 단어만 늘어놓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 사전은 의외로 많이 팔렸다.

신제품 개발팀이나 마케팅팀처럼 제품의 이름을 짓는 부서에는 이 사전이 하나씩 놓여 있다. 먼저 제품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의미를 생각하고 사전을 뒤져서 같은 의미를 지닌 외국어 중에 어감이 제일 좋은 것을 찾으면 이름짓는 일이 쉽게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에 가장 많이 판매된 소설일 가능성이 높은(신뢰할 만한 집계가 없기 때문에 정확한 도서 판매량은 출판사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를 생각해 보자.

원제를 직역해 ‘최후의 비밀’이라는 제목을 붙였다면 과연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 ‘최후의 비밀’이 소설 내용의 핵심이기는 하지만 비슷한 이름을 너무 많이 보아온 탓에 전혀 끌리지 않는 제목이다. 하지만 ‘뇌’는 내 몸의 일부인 데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은 신비스러운 곳이기 때문에 알고 싶은 부분이다.

비슷한 예는 일본에도 있다. 일본에서는 홍콩 멜로 영화가 전혀 맥을 추지 못하는데, 왕자웨이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은 꽤 인기를 얻었다. 원제를 무시하고 제목을 ‘사랑을 하는 혹성’이라고 멋있게 바꾼 것이 히트의 요인이었다고 한다.이런 식으로 상품의 내용이나 가치보다 이름 때문에 히트 상품이 되는 경우는 종종 있다. 제목을 짓는 요령과 기술은 무척 많다.

‘뇌’나 ‘괴물’처럼 듣는 순간 호기심이 발동하는 단어 하나를 찾아내는 것은 한순간 번쩍 떠오른 아이디어일 가능성 크다. 하지만 두 개의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는 요령과 기술이라는 것이 들어간다.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

‘장미의 이름.’ 장미에 이름이 있던가? 설마 품종 이름을 아닐 테고? ‘아름다운 구속.’ 어떻게 구속이 아름다울 수 있지? ‘에덴의 동쪽.’ 왜 하필이면 동쪽이지? 또 거기에 뭐가 있지?생각해 보면 히트한 문화상품의 이름 중에는 간단한 두 개의 단어로 이루어졌지만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것들이 무척 많다. ‘사람의 아들’ ‘어둠의 자식들’ ‘인간의 조건’ ‘반지의 제왕’ 등등. 이런 제목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생각을 하게 만든다.제목이 길면 내용을 전달하기 쉽지만, 내용을 잘 전달한다고 좋은 제목은 아닌 것 같다.오히려 의미를 알 듯, 모를 듯한 제목을 붙여야 콘텐츠에 대한 궁금증을 일으키게 만들 수 있다. 호기심을 일으켰다면 일단은 성공한 셈이다. 그 비법 중의 하나는 평범하지만 평소에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단어를 이어 붙이는 것이다.

김지룡 문화평론가 dragonkj@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