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요즈음 작은 공동체를 이루어 소박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에 대한 글들이 많이 나온다. 복잡하고 경쟁적인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겐 매력적이다. 아쉽게도, 그 운동이 남긴 교훈은 대안 공동체들이 실패한다는 것이다.
근본적 문제는 낮은 생산성이다. 모든 사회는 비교 우위에 바탕을 둔 분업을 조직 원리로 삼아 생산성을 높인다. 원시 사회에서도 사내들은 사냥을 하고 여자들은 과일들과 벌레들을 채집했다. 그런 원리를 거스르는 대안 공동체들은 생산성이 아주 낮다. 규모가 작아서, 분업의 효과도 작다. 자연히, 외부 세계와의 거래에서 수입이 수출보다 훨씬 많고, 그런 적자는 궁극적으로 파산으로 이어진다.
대안 공동체들은 외부 세계와 단절된 닫힌 체계(closed system)가 아니다. 그들의 생업은 대부분 농사나 관광객들을 위한 수공예품들 제작이다. 그래서 필수품들은 거의 모두 외부에서 들어온다. 집을 짓고 고치는 데 필요한 못, 돌쩌귀, 페인트에서부터 농사 짓는 데 필요한 씨앗과 트럭 연료를 거쳐 아플 때 쓰는 약품까지도 그렇다. 그런 물자들은 그들이 스스로 만들어 쓸 때보다 무척 싸다. 통념과는 달리, 시골의 소박한 삶은 도시의 복잡한 삶보다 기회 비용이 엄청나게 크다.
일기예보와 음악과 같은 정보들도 외부에서 들어온다. 그것들은 외부 소비자들이 비용을 부담하는 광고 덕분에 무료다. 정보도 일방적으로 외부에 빚을 지는 셈이다. 세금은 한 푼도 안 내지만, 국방과 치안의 혜택을 모두 누린다.
이렇게 보면, 대안 공동체들은 외부 세계에서 생산한 가치들을 아주 싼 값으로 또는 거저 얻는다. 즉 외부 세계의 노력에 편승한 무임승차자들(free riders)이다.
대안 공동체들이 실제로 천국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노동의 지도와 엄격한 규율이 필수적이며, 여론의 압력이 아주 크고 사생활은 누릴 수 없는 사치다.
영국의 사회개혁가 로버트 오웬(Robert Owen)이 1880년대 만들었던 공동체 뉴 하머니(New Harmony)가 구성원들의 분쟁으로 실패했다는 것은 좋은 예다.
대안 공동체의 이상적 모습이 제시된 토머스 모어(Thomas More)의 ‘이상향(Utopia)’ (1516)에 나온 것처럼, 빈둥거릴 핑계도 없고, 주막도 술집도 색주가도 없고, 타락할 기회도 없고, 몰래 만날 수 있는 장소도 없다. 극단적이면서 성공적인 대안 공동체인 수도원의 실제 모습이 바로 그러하다. 특히 수도승들은 상사에게 무한한 복종을 서약하고 자신의 삶 전체를 공동체에 바친다.
흥미로운 것은, 세월이 지나면서, 수도원 조직이 차츰 안락함과 사생활을 보다 많이 보장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수도원 건물들 변화에서도 확인된다. 초기 수도원에선 도서실이 따로 없고 벽의 패인 곳들에 책들을 얹어 두었지만, 차츰 도서실이 따로 만들어졌고 규모도 점점 커졌다. 수도원처럼 속세와의 절연을 목표로 삼은 공동체도 외부로부터 정보와 지식을 공급받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대안 공동체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잘하면, 복잡하고 경쟁적인 현대 사회에서 지친 사람들이 잠시 머물면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피난처 노릇은 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선 대안이란 말이 너무 가볍게 쓰인다. 현존하는 관행, 풍습, 법, 기구 또는 사회에 대한 대안을 선뜻 내놓는 사람들은 현존하는 것들이 사회적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대안들 가운데 가장 나은 것들로 판명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대안으로 제시된 것들은 거의 모두 오래 전에 버려진 것들이다.
대안 공동체도 그렇게 버려진 것이다. 사람들은 도시를 이루어 어깨를 부딪치면서 살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거의 모두 풍요롭고 안락하며 좀 방탕한 삶을 좋아한다. 그래서 고대 문명들이 나온 시기에 시작된 도시 혁명(urban revolution)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문을 닫는 시골 초등학교들이 그 점을 아프게 일깨워준다.
대안 공동체들이 내건 헛된 꿈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적잖이 해롭다. 그것의 해독제는 옛 시골 사회의 실상을 보여주는 책들이다. 중세 서양의 모습을 보여주는 좋은 책들 가운데 벨기에 역사학자 앙리 피렌(Henri Pirenne)의 ‘중세 도시들’이 추천할 만하고 마크 트웨인의 과학소설 ‘아서 왕 궁정의 콘네티컷 양키’는 재미도 크다.
복거일 소설가·사회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