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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말한다]´화가들은 왜 여자를…´ 펴낸 화가 정은미씨

입력 | 2002-09-27 17:16:00


“남녀를 불문하고 여성이란 존재 자체가 아름답고 매력적이니까 여성을 그리는 것 아닐까요.”

‘화가들은 왜 여자를 그리는가’(한길아트)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책을 낸 서양화가 정은미씨(40)의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그리 간단치 않다. 저자를 따라 여성 그림 한 편 한 편 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한 시대의 사회상과 문화의 흐름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 속 여성들은 아름다움과 관능을 자랑하는 비너스 형, 모성을 강조하는 마리아 형, 돌연변이 미인 모나리자 형, 영감을 자극하는 뮤즈 형,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아르테미스 형 등으로 나뉜다. 물론 혼합형도 적지 않다. 이 중 비너스 형을 보면, 시대에 따라 그 이미지가 어떻게 변해갔는 지 명쾌하게 드러난다.

서양 미인의 원형으로 군림하는 밀로의 비너스(기원전 2세기)는 당시 신화적 분위기를 반영한 여신의 당당함을 담고 있다. 16세기, 티치아노는 관능적인 침실의 ‘비너스’를 선보인다. 르네상스 시대 인간 중심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17세기 벨라스케스의 ‘화장하는 비너스’는 여인의 뒷 모습 그림이다. 앞 모습 누드에 싫증이 난 남성들의 욕구를 대변해 고혹적인 뒷 모습의 누드로 변모한 것이다.

18세기 로코코 시대 여인 그림은 주로 앳된 소녀의 모습이다. 육체와 영혼을 타락시킨 당시 귀족들의 정신적 퇴행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다. 19세기말 뭉크 그림 속 여성은 악마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격변기였던 당시 유럽에서 남성들은 신여성들의 분출하는 에너지가 남성 중심사회를 파멸킬 것으로 우려한 나머지 여성들을 요부 이미지로 왜곡시켰던 것이다. “미술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작은 테마 하나로도 미술의 흐름, 나아가 문화의 흐름을 알 수 있는 것이죠. 미술을 알면 역사가 보입니다.“

서울대 미대 재학 시절부터 흥미로운 테마에 관심을 가졌던 정씨. 딱딱한 미술 강의에 대해 고민하다5년전 대학 강의를 하면서 이같은 테마를 정해 수업을 했고 이번 책은 그 결실인 셈이다.

그는 2000년 ‘몬드리안이 조선의 보자기를 본다면’이란 책을 내기도 했다. 몬드리안의 추상화와 조선시대 보자기의 구성이 기본적으로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해 서양미술에 끼친 동양미술의 영향을 재미있게 소개한 책이다.

그러나 서양화가인 정씨는 정작 여성을 소재로 한 그림은 거의 그리지 않는다. 이에 대해 “여성을 그리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여성 그림을 논하기가 더 자유로운 것 같다”고 말한다.

21세기 여성을 소재로 한 그림은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 궁금했다.

“이젠 여성 그림에서 벗어나야죠.”

남성들이 여성을 관음의 대상으로 보는 풍조, 남녀를 대립적으로 보는 풍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