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다라’의 작가 김성동씨(55)는 6년째 전국을 떠돌아 다녔다. 경기 양평군 옥천면, 강원 인제군 백담사 등을 거쳐 지금은 강원 평창군 오대산 해발 700m에 위치한 토굴에 칩거중이다. 1978년 깨달음의 길에 나서지만 방황과 좌절에서 헤매는 법운 수좌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만다라’처럼 아직도 그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야 하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가 최근 서울 인사동에서 나타났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직후에 썼던 ‘염소’(청년사)의 개정판이 나왔기 때문이다.
김성동씨는 담배에 연신 불을 붙였다. 대신 그 좋아하던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20여 년 전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시력이 악화돼 석 달 이상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인지 그는 벌써 두터운 털옷을 걸치고 있었다.
지난해 신작 ‘꿈’ 발표 후 1년 만에, ‘염소’를 다시 낸 소감을 물었다.
소설가 김성동씨는 "세상이 많이 바뀌는 것처럼 보여도 생명의 소중함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라고 말했다. 황태훈기자
“5·18이후 처음 쓴 글이라 의미가 남다르다. 스무 해가 넘은 작품이어서 ‘새마을 운동’처럼 시대에 맞지 않는 부분을 손질하고 ‘아질개(새끼 또는 어리다는 의미)’같은 한국 고유어를 60여개 첨가했다. 최근 영어 열풍이 불고 있지만 한국말의 다의적인 의미를 살리고 싶었다.”
‘염소’의 화두는 생명이다. 열여덟 달된 흑염소는 칼잡이가 다가가자 “나는 살고 싶습니다. 살아서 이 온누리의 아름다운 것들을 좀 더 뚜렷하고 튼튼하게 사랑하고 싶습니다”라고 절규한다. 서정적인 ‘동화’ 같으면서 강렬한 생명에 대한 ‘욕구’가 느껴진다.
그러나 염소는 하늘 바람 별 동물친구들을 생각하며 고통스러운 죽음을 편안하게 맞이한다. 작가는 “이 장면에서 80년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군에게 희생된 광주 시민을 떠올렸다”며 “그 당시 글 쓰는 자는 막막함과 자괴감에 빠져 있었다. 결국 선택한 방법이 부드러운 언어로 저항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소설은 ‘염소’의 마지막 순간에서 출발해 그가 살았던 솔미 마을의 여러 풍경을 지나 다시 마지막 순간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묻는다.
“사람들은 왜 살아 숨쉬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요?”
김씨는 “생명은 인류가 영원히 추구해야할 덕목”이라며 “그래서 염소의 마지막 말은 이 시대에도 유효하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봄 고려 말기의 승려로 공민왕의 신임을 받아 노비해방 등 개혁을 시도했던 ‘신돈’을 비롯 ‘묘청’ ‘궁예’를 다룬 3부작 역사 소설을 발표할 예정이다. 산을 오르다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오는 가출한 사내의 이야기를 통해 돌고 도는 세상을 그린 중편 ‘산’도 구상 중이다.
그는 “조만간 경기 양평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할 것”이라며 “하지만 나의 업보 때문인지 산과 절을 떠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