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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슈]금감원 왜 계좌추적 않나

입력 | 2002-09-29 18:25:00


현대상선의 대북 송금설(說)에 대한 의혹이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의 주장을 입증할 구체적인 자료는 없다. 다만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4900억원을 긴급 대출해준 2000년 6월 전후 시점의 금융거래 명세가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러한 의혹을 풀어줄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현대상선에 대한 계좌추적이지만 금융감독원은 계좌추적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출 권력외압 없었나▼

산업은행은 현대그룹의 경영권 분쟁 이후 현대상선이 자금난에 빠져 4900억원을 긴급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대상선은 대출 받기 직전인 5월26일 대북사업 창구인 현대아산에 560억원, 현대중공업에 1933억원을 출자했다.

현대상선은 6월7일 언제든지 꺼낼 수 있는 4000억의 당좌대출 약정을 산은과 맺었는데 현대상선은 6월8일부터 부도위기에 몰린 현대건설 기업어음(CP) 1400억원을 매입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과연 산은이 5월 말, 6월 초 현대상선의 자금수급 계획만을 믿고 현대계열사 지원 사실을 모른 채 대출해줬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또 당시 산은의 현대상선 대출잔액은 2600억원에 불과했는데 한꺼번에 대출잔액의 2배 가까운 4900억원을 빌려준 것도 금융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권력 핵심부의 외압(外壓)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이 부분이다.

금융계에서는 현대상선이 5월에 산업은행과 미리 협의해 자금지원을 약속 받은 후 현대계열사를 지원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산은 단독결정 했나▼

2000년 6월 현대상선의 주채권은행은 외환은행이었지만 산업은행만 자금을 지원하고 외환은행은 빠졌다. 그해 5월에는 현대건설 유동성 위기가 본격적으로 불거지면서 시중엔 ‘다른 현대계열사도 문제 있는 것 아니냐’는 루머가 퍼졌었다.

외환은행 김경림(金暻林) 이사회 회장과 이연수(李沿洙) 전 부행장은 “당시 외환은행은 현대건설 문제를 해결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관계사인 현대상선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산업은행과 대출 여부를 논의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의 현대상선 대출 사실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처음 들었다는 설명.

그러나 산업은행 박상배(朴相培·당시 영업본부장) 부총재는 “이연수 부행장과 여러 번 전화로 통화하며 협의했다. 외환은행이 여력이 없어 산업은행이 나선 것”이라며 엇갈리는 진술을 했다.

지금까지는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 정확히 가려내기 어렵다. 만약 산업은행이 외환은행과 협의 없이 지원했다면 의혹은 더 커진다.

▼금감원 계좌추적 버티기▼

현대상선 대북 송금설은 2000년 4∼6월 회사의 자금거래 명세를 일일이 조사하는 계좌추적으로 밝혀낼 수 있다.

현대상선은 당좌대출 4000억원에 대한 용도를 △CP 상환 1740억원 △선박용선료 1500억원 △선박금융 590억원 △회사채 상환 170억원 등에, 나머지 900억원은 기업 운영자금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장이 결재하면 금감원은 계좌추적을 할 수 있다. 그동안 주가조작이나 대우그룹 분식회계를 조사하기 위한 특별감리 등에서 수많은 계좌추적권을 발동해 왔다.

금감원은 현재 현대상선에 대한 특별감리를 하고 있으나 이는 지분법 적용 관련이며 대북 송금설과는 관련이 없다.

지분법은 자회사의 손익을 모회사의 재무제표에 반영하는 것. 현대상선은 지분법 적용대상 회사를 일부 빠뜨리거나 자회사의 손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방식으로 손실규모를 줄였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금융계는 금감원이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조사하면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근영(李瑾榮) 금융감독위원장은 “계좌추적을 하려면 불공정거래를 의심할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어야 하며,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정치권 폭로만으로 계좌추적권을 발동할 수는 없다”며 “현재로서는 현대상선과 계열사에 대한 자금추적 조사를 벌일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