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믿었던 남자 펜싱 플뢰레와 에페에서 노골드에 그쳤다.
한국의 금메달 시나리오가 서막부터 어긋난 셈이다. 당초 한국 선수단은 대회 첫날인 29일 남자 플뢰레와 에페에서 우승을 예상했지만 출발부터 깨져버린 것.
금 사냥에 실패한 펜싱 대표팀은 침통한 분위기에 빠졌다. 하지만 한국 펜싱의 현주소를 살펴보면 김상훈이 남자 플뢰레에서 목에 건 은메달도 박수를 받기에 충분하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 속에서 1000명 남짓한 전체 등록선수에 실업팀이 3개밖에 없는 열악한 실정에 허덕이고 있는 것. 그나마 1996년부터 2000년까지 한 해에 두세달 정도 대표팀이 유럽 전지훈련을 떠났으나 협회가 지난해부터 회장이 없는 사고 단체로 전락하면서 원정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올해에도 불과 2주 펜싱의 본고장인 유럽에 캠프를 차리고 이번 대회에 겨우 대비했을 정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현희와 구교동이 8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각각 따낸 것은 기적에 가깝다는 평가. 오히려 이들의 선전이 무작정 아시아경기대회 기대 수준만 높인 셈.
또 세대교체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10년 가까이 태극마크를 달고 있는 김영호는 기술이 모두 상대에게 노출돼 이번 대회에서 애를 먹었다. 홈에서 열린다는 사실만으로 자칫 대회 준비에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지적도 있다. 펜싱협회의 한 고위 관계자는 공공연히 ‘안방에서 열리는 대회인 만큼 심판은 우리 편이 될 것’이라며 떠들고 다니기까지 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날 김상훈은 오히려 경고 2차례를 받고 흐름을 빼앗기며 우승의 기회를 날려버린 것에서 보듯 판정에서 한국에 결코 유리하지 않았다.
그나마 김영호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꼽히는 김상훈의 성장 가능성을 발견한 게 한국 펜싱의 수확이었다.
부산〓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