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악, 도깨비다! / 손정원 글 유애로 그림 / 44쪽 9000원 느림보(만 5세∼초등 2학년)
책 표지에 둘러진 회색 띠에는 ‘가슴에 꼭 껴안고 거울 앞에 서보라’는 글이 씌어 있다. 편집자의 의도를 알면서도 아이 마음이 되어 보고 싶은 생각에 그렇게 해 본다. 거울에 비친 책과 그걸 보며 즐거워하는 자신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난다. 표지에 나온 장승은 책 제목처럼 “으악, 도깨비다!” 소리치며 놀라는 모습이 아니라 도리어 남을 놀라게 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림에는 놀란 대상이 보이지 않는다. 거꾸로 써 놓은 제목은 장승을 보고 놀란 존재가 누구일까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본문의 첫 장을 펼쳐 보니 옛날 이야기가 솔솔 들려올 것 같다. 대수롭지 않은 그저 그런 이야기도 여기에서는 재미있는 얘기가 되어 술술 나올 것 같다. 우거진 풀들 사이로 옹기 몇 개와 제각각 생긴 장승들이 아무런 근심이 없는 듯 편안한 모습으로 서 있다. 아하! 이 곳은 아직 도시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그야말로 깊고 깊은 산골에 있는 장승마을이라 했지. 해맑은 장승들의 표정이 사람들의 자취가 없어 행복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이야기 속의 장승들은 밤이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그러나 날이 밝기 전에 제 자리로 돌아오지 않으면 자유를 얻을 수 없다. 그런데 놀다가 날이 밝은 줄도 모르던 동무 하나가 그만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다. 게다가 사람들의 흔적도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장승마을에 위험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자유란 반드시 책임이 뒤따르는 것. 장승마을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돌아가신 옹기 할아버지와의 약속과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는 동무를 구하려는 마음은 위험에 처한 장승마을을 지키는 데 큰 힘이 된다.
책 속의 그림에는 사람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자연을 보호하자’라는 말도 한마디 없다. 다만 그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와 그들이 훔친 물건(장승과 옹기)만이 그들이 몰고 온 트럭에서 보일 뿐이다. 이제 알겠다. ‘으악! 도깨비다’라는 제목은 바로 사람이 외치는 소리였다. 그 사람은 다시는 그곳을 찾아와 장승과 옹기를 훔쳐 가지 않겠지. 그곳에 음료수 캔과 비닐봉지를 버리는 일도 없겠지. 그 곳은 ‘도깨비’가 나오는 곳이라고 생각할테니….
볼수록 일곱 장승의 개성을 잘 살린 그림에 정이 간다. ‘기차 타고 쿨쿨/버스 타고 털털/다시 타박타박 반나절’을 걸으면 정말 그곳, 장승마을이 나올 것만 같다.
오혜경 주부·서울 강북구 미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