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복싱 WBC 슈퍼라이트급 챔피언 홍창수가 2001년 9월 타이틀 3차 방어에 성공하며 환호하고 있다. - 동아일보 자료사진
북한 국적 재일동포로 WBC 슈퍼플라이급 챔피언인 홍창수(洪昌守·28) 선수가 12월 20일 오사카(大阪)에서 열릴 방어전을 앞두고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달 17일 북-일 정상회담에서 북측이 일본인 납치 사실을 인정한 뒤 일본에서 반북(反北) 감정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
동포 3세인 그는 프로 데뷔 후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북한 국적임을 당당히 밝히고 일본명이 아닌 본명을 사용해 왔다. 재일동포 유명 운동선수나 연예인들이 인기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국적을 쉬쉬해 온 데 비하면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는 무명시절부터 ‘코리아는 하나’라고 새긴 트렁크를 입고 링에 올랐고 챔피언이 된 뒤에는 서울에 이어 평양 방어전도 추진해 왔다.
그는 북한계 청소년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챔프’로 북한에서 ‘노동영웅’ 칭호를 받았으며 조선학교 시절은 물론 졸업 후에도 총련 활동에 적극 참가해 왔다. 그는 시합 때마다 “링에선 나 자신을 위해 싸우는 것이지만 이기면 동포들에게 용기를 준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말해 왔다. 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는 ‘우리의 챔프 홍창수 스토리’라는 특집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협박 e메일이 쇄도하자 게시판을 폐쇄했다. 방어전과 관련해 지난달 30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는 납치문제에 대해 질문을 받고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납치는 없다고 믿어온 만큼 배신당한 것 같아 충격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회견에서 자신의 일보다 조선학교 학생들을 더욱 걱정했다. 그는 “어린이들은 아무 관계도 없다. (학생들에 대한) 괴롭힘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평소 남북한 경계선인 판문점에 특설링을 설치, 세계타이틀전을 갖기를 꿈꿔 온 그는 당분간 평양 방어전 계획도 연기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그가 속한 가나자와 체육관측은 “스포츠와 정치는 관계가 없다. 스포츠로 결과를 내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분단의 비극과 뒤얽힌 ‘정치’는 이미 그를 한없이 참담하게 만들었다.
도쿄〓이영이특파원 yes20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