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병풍(兵風) 공방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의 장남 정연(正淵)씨의 병역면제 의혹을 제기했던 김대업(金大業)씨가 핵심 증거라며 검찰에 제출한 녹음테이프의 변조 의혹이 새롭게 떠오른 데다 한나라당이 “한 인물로부터 변조에 직접 가담했다는 제보를 확보했다”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테이프 조작에 참여했다고 주장하는 이 제보자는 지난달 30일 오전 한나라당에 이 같은 사실을 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일(金榮馹) 사무총장은 이날 오후 원외지구당 위원장 연석회의에서 당에 접수된 제보 내용을 일부 공개했다.
대구에 살고 있으며 자신의 성을 K라고 밝혔다는 이 제보자는 “친구 1명과 함께 김대업씨의 테이프 조작에 참여했다. 대구 교동시장 가게 한 채와 2700만원을 받기로 했으며 현찰 2350만원과 50만원짜리 수표 3장을 받았고 200만원은 아직 못 받았다”고 밝혔다고 당 관계자가 전했다. 김대업씨의 지시에 따라 테이프를 조작했으며 작업 장소는 친구 누나 집이었고 김도술씨 역할은 친구가 했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김 총장은 “제보내용이 아주 구체적이지만 철저한 사실확인이 필요하다”며 1일 오전 당 김대업정치공작진상조사단장인 이재오(李在五) 의원을 제보자가 살고 있는 대구로 급히 내려보내 신병 확보에 나섰다. 이 의원은 이 제보자를 직접 만나 제보내용을 확인하는 한편 기자회견을 위한 설득 작업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은 당초 1일 오후 3시경 이 제보자의 양심선언 회견을 준비했으나 사실 확인을 더 해야 한다는 일부 의견에 따라 회견을 연기했다.
한 당직자는 “테이프 조작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망이 좁혀오자 스스로 당에 제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제보자가 김씨에게서 받은 수표 일련번호까지 확보했다”고 전했다.
이 제보자의 증언의 진실 여부에 따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첨예하게 맞붙은 병풍 공방의 승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증언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김씨의 병풍 조작극이 드러나게 되고 김씨의 주장을 근거로 병풍 공세를 폈던 민주당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게 된다.
반면 제보자 증언이 허위일 경우 한나라당이 민주당의 공세에 밀려 정국 주도권을 빼앗기는 역풍(逆風)을 맞게 될 수도 있다.
한나라당은 이 제보자의 증언이 신빙성이 있다 하더라도 사실관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당직자들에게 일제히 함구령을 내린 뒤 제보내용의 사실확인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검찰은 김씨의 테이프 변조 가능성에 주목하면서도 한나라당의 제보자 증언에 대해서는 사실을 확인해 봐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민주당 장전형(張全亨) 부대변인은 논평에서 “한나라당의 주장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를 못 느낀다”며 “이번 사건의 본질은 이 후보의 아들 두명이 부도덕한 방법으로 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민은 이미 병역비리의 몸통이 이 후보의 부인 한인옥(韓仁玉)씨로 알고 있는 만큼 이제 진실을 고백할 때다”라고 말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