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순간까지’. 럭비 결승에서 한국의 성해경(앞)이 대만 선수의 태클에 걸려 넘어지기 직전 패스할 곳을 찾고 있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삼키며 운동해야 했기에 시상대에 오른 기쁨은 더욱 컸다. 금메달과 동메달을 딴 세팍타크로 선수들과 7인제 경기에서 우승한 럭비 선수들이 그들이다. 특히 남자 세팍타크로팀의 금메달은 전혀 기대하지 않은 것이기에 더욱 뜻깊었다. 또 럭비는 98년 방콕대회 2개 종목(7인제,15인제) 석권이 운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며 7인제에서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한국 세팍타크로가 아시아경기 출전 사상 첫 남녀 동반 메달을 획득한 부산 동서대체육관은 축제분위기였다. 선수들은 물론 관중석에서 초조히 경기를 지켜본 부모들과 세팍타크로협회 관계자들은 서클종목에서 여자팀의 동메달에 이어 남자팀이 금메달을 확정하는 순간 너나 할 것 없이 얼싸안은 채 눈물을 줄줄 쏟았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국내에서 오늘의 영광을 위해 세팍타크로인들이 기울인 정성은 상상 이상이었다.
비인기 종목으로 외면을 당해온 세팍타크로인들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아시아경기대회를 목표로 ‘600일 작전’을 수립했다. 이영웅 협회장(성화통신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도 큰 힘이 됐다.
‘600일 작전’의 뼈대는 대표팀을 조기에 구성, 600일 동안 합숙훈련을 통해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것.
이에 따라 2000년 말에 선발된 남녀 24명의 대표선수들은 개인생활을 완전히 포기한 채 빈 체육관을 찾아 전국을 배회하며 새벽부터 저녁까지 하루 8시간의 지옥훈련을 감수해야 했다.
땀의 결과는 정직했다. 남자팀은 5월 아시아경기 프레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고 등록선수가 60여명에 불과한 여자팀도 강팀으로 탈바꿈했다.
부산〓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서클게임이란…5명이 패스 제기차기 비슷
세팍타크로는 ‘발로 차다’는 뜻을 가진 말레이시아어 ‘세팍’과 ‘볼’의 의미를 가진 태국어 ‘타크로’가 합쳐진 합성어.
등나무나 인조섬유를 엮어 만든 볼은 12개의 구멍이 있고 20개의 교차점이 있으며 남자용은 원주가 42∼44㎝, 여자는 43∼45㎝이고 무게는 170∼180g이다.
동남아에서 각광받는 세팍타크로는 서클게임과 단체, 레구(단조)의 3종목이 있다.
한국이 금메달을 딴 서클게임은 한국 전통 민속놀이인 제기차기와 유사하게 지름 7m와 4m의 원 사이에서 5명이 배열해 별모양으로 서로 패스를 주고 받을 때마다 점수가 주어지는 경기. 세트당 10분씩 3세트의 경기로 순위가 결정된다. 볼을 떨어뜨리거나 한 선수가 3회 이상 볼을 다루었을 경우 파울로 판정돼 시간을 잃게 된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7인제 아시아경기 2연패…럭비 대만 꺾고 금메달
오직 열정 하나만으로 일군 값진 금메달이었다.
울산공설운동장에서 열린 럭비 7인제 결승에서 대만을 33-21로 꺾고 98방콕아시아경기대회에 이어 2연패를 달성한 한국 선수들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2연패를 차지했다는 기쁨과 함께 열악한 환경에서도 럭비에 대한 애정 하나만으로 힘겹게 버텨온 지난날에 대한 회상이 가슴 깊은 곳에서 밀고 올라왔기 때문일까.
유럽과 오세아니아 지역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럭비이지만 한국에선 외면받고 있는 것이 현실.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실업팀(삼성SDI, 한국전력, 포항강판, 상무)도 4개밖에 없다. 중고교 선수들도 다른 인기종목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추세다. 방콕대회 때 7인제와 15인제를 동시에 석권하면서 럭비 붐을 기대했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날 열린 결승에 나선 7명 중 5명이 방콕 멤버. 세대교체가 원활하게 되지 않아 기존 멤버로 버텨야 했기 때문이다. 용환명(삼성SDI)과 성해경(포항강판)은 올해로 서른살이고 다른 선수들도 대부분 20대 후반이다. 그래도 럭비인들이 열정을 잃지 않는 이유는 순수한 아마추어리즘을 추구하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울산〓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