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소설]8월의 저편 138…돌잡이 (4)

입력 | 2002-10-02 17:41:00


“모리다 가, 야마토 요리점, 마스모토 펌프점, 후세 식료품점, 후쿠시마 철물점, 가타야마 쌀집, 다나베 자전거점”

“아이고 잘도 외운다”

“하기사 경주는 서당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아이가. 남자였으면 과거 봐서 진사나 대과에 급제했을 거라고, 훈장이 다 그랬다”

“아이다. 늘 드나드는 조선 사람 가게 이름은 하나도 못 외운다, 간판이 없는 가게도 많고 말이다. 왜놈 가게는 못 들어간다 아이가? 그래서 가게 앞을 지날 때 간판 글자를 슬쩍 읽는 거다, 미야모토 사진관, 난바 목재점, 이노우에 서점, 도요세 양가구점, 가도다 문방구점 하고 말이다”

“아무튼, 15년 전만 해도 하나도 없었던 것들이다”

“아이고, 합병 전에는 쪽바리 놈들이 어데 한 명이나 있었나”

“지금은 1천2백 명이나 된다더라. 스무 명에 한 명은 왜놈 꼴이다”

“조선 사람들은 점점 구석쟁이로 몰리고 있다”

“…아까 그 형사, 누구 집에 갔을꼬”

“아이고, 또, 누구네 집 귀한 아들이 죽겠다”

“왜놈들 눈에는 다들 피가 묻어 있다. 남자나 여자나 아이나 노인들까지도…”

“종남산 쪽으로 가는 것 같던데, 당신네 아들은 무사한가?”

분이는 입술을 툭 내밀고 용두목 앞 바위에 앉아 있는 젊은 남자를 가리켰다. 남자는 낚싯줄을 드리운 채 머리를 푹 숙이고 잠들어 있다.

“야야! 만용아! 강에 떨어지겠다!”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들은 남자는 얼굴을 들고 손을 흔들었지만, 금방 또 꾸벅꾸벅.

바람이 휭휭, 구름을 화악산 쪽으로 날려보내자, 이불을 벗겨낸 파란 하늘이 이제야 살겠다는 듯이 쭈욱 기지개를 펴고 눈을 떴다. 벚꽃도 진달래도 활짝 피어 있다. 종달새 한 마리가 종달종달 종달종달 지저귀면서 파란 하늘로 빨려 들어갔다.

“돌잔치 때 붓을 잡길래, 크면 박사가 될 줄 알았는데”

“뭐 어떻노, 건강하게 잘 살아 있는데. 애지중지 키운 아들자식이 의열단에나 들어가 봐라. 하기사, 목숨을 아끼지 않고 투쟁하는 젊은이들이 훌륭키는 하지만도, 자기 자식은 살아 있기를 바라는 법이다, 흘륭하면 무슨 소용이고”

“오늘 이가네 아들 돌이재”

“토실토실하고 건강한 사내아이더라, 내 안아 봤다 아이가”

글 유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