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커플.’ 결혼을 약속한 연인 사이인 김형주(왼쪽)와 이은희가 다정하게 앉아 금메달을 자랑스럽게 들어보이고 있다.부산=특별취재반
“은희야 1등하고 와라.”
“오빠도 꼭 금메달! 파이팅.”
함께 있을 땐 무서울 것이 없지만 떨어져 있으면 불안한 것이 사랑하는 남녀의 관계. 더욱이 전쟁터에 ‘님’을 보내야 한다면 그 심정이 어떨까.
한국 남녀 유도 경량급의 간판스타 김형주(26·66㎏급·한국마사회)와 이은희(23·52㎏급·성동구청). 장래를 약속한 커플로 유명한 이들은 부산아시아경기대회 유도 남자 66㎏급과 여자 52㎏급 결승이 열린 2일 오전 8시 선수촌내 계체장에서 잠시 스쳐지나듯 만났다.
할 말은 많았지만 두 사람 모두 ‘큰 일’을 앞둔 처지. 말 한마디가 부담이 될까 조심스러웠고 ‘잘하라’는 말만 전하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경기를 1시간 가량 앞두고 구덕체육관 옆 연습매트에서 함께 땀을 흘리면서도 이들은 주위 시선이 부담스러운 듯 눈길 한번 나누지 않았다. 경기시간이 가까워지며 먼저 짐을 꾸려 라커룸으로 떠나던 이은희가 기습적으로 던진 ‘형주 오빠 파이팅’이 이날 처음 나눈 격려였다. 그만큼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고 금메달이 조금씩 눈 앞으로 다가오자 이은희의 ‘모성애’가 더 이상 참지를 못했다. 김형주가 준결승에서 일본의 오미가와 미치히로와 만나 결승 진출의 최대 고비를 맞자 이은희가 라커룸을 박차고 나온 것. 매트가 코 앞에 보이는 선수 출입구 언저리에 자리를 잡은 이은희는 경기 내내 맞잡은 두 손을 놓지 못했다. 5분의 경기시간이 다 지나도록 김형주가 좀처럼 오미가와를 메치지 못한 채 팽팽한 접전이 이어졌기 때문.
그러나 이은희의 간절한 기도가 효험이 있었던 걸까. 전광판의 시계가 종료 29초를 표시하는 순간 김형주의 들어메치기에 오미가와가 매트 위로 나뒹굴었다.
기쁨을 감추고 조용히 라커룸으로 사라진 이은희는 곧이어 열린 자신의 경기(준결승)에서 지난해 아시아선수권 우승자인 요코사와 유키(일본)를 허벅다리걸기 절반으로 꺾고 나란히 4강 관문을 통과했다.
드디어 결승. 고비를 넘기니 오히려 쉬웠다. 김형주는 결승에서 투르크메니스탄의 누르무하메드프를 2분3초만에 업어치기 한판으로 눌렀고 이은희도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중국의 시안동메이를 상대로 허벅다리걸기로 유효를 따낸 뒤 다시 유효를 추가해 금메달을 확정지었다.
시상식을 기다리다 금메달을 목에 걸고 퇴장하는 김형주를 만난 이은희는 씩씩하게 손을 맞잡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 잘할 거예요.”
김형주와 이은희가 처음 가까워진 것은 98년 월드컵 단체전 출전을 앞두고 태릉선수촌에 나란히 입촌했을 때. 이후 4년 가까이 정을 키워온 이들 커플은 최근 결혼을 약속했다. 사랑과 명예를 양손에 쥔 예비부부. 이들에게 지금 더 이상 부러운 것이 있을까.
부산〓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