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의 김모씨. 그는 요즘 새삼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를 스승으로 여기고 산다. 그 위대한 철학자에 대해 그가 아는 건 별로 없다. 단지 “결혼해 봐라, 후회할 거다. 안하면? 물론 후회하지” 하는 명언을 남겼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 철학자는 결혼을 안 했단 얘기를 어디서 읽은 것 같은데, 과연 지혜로운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니 사부로 모시는 게 온당할 듯 싶은 것이다.
그는 밖에선 아주 잘 나가는 남자이다. 능력 있고 박력 있고 포용력까지 있다는 평을 심심치않게 듣는다. 그러나 집에만 들어오면 아내의 바가지 때문에 거의 돌 지경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그라고 해서 가만있지는 않는다. 사실은 거의 아내 못지 않게 그도 죽기살기로 싸운다.
어느 때인가, 잠깐 자신의 태도를 반성한 적도 있을 정도다. 아내가 싸움을 거는 걸 빌미로 자신이 밖에서 쌓인 스트레스까지 아내한테 다 쏟아붓는 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저도 처량할 때가 많습니다. 분명 서로 하루만 못 봐도 죽고 못살 것처럼 끔찍하게 사랑해서 한 결혼이거든요. 그런데 어째서 요즘은 하루만 안 싸우면 허전할 지경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하소연이다. 걸핏하면 아옹다옹 싸워대는 젊은 부부들치고 그의 말에 공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린 누구나 어른이 돼도 무의식 속에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갖고 있다. 그것은 곧 우리 모두 마치 어린아이처럼 나보다 크고 강한 누군가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 기대고 싶은 강한 욕구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부부관계가 힘든 것도 그런 욕구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20, 30대의 젊은 부부들이 치열하게 싸우는 건 어린시절 부모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욕구, 의존하고자 하는 욕구를 배우자를 통해 다 받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앞서 예를 든 커플도 마찬가지다. 남편의 경우, 사회생활에서는 남에게 주고 베푸는 어른이다가 집에 돌아오면 밖에서 써버린 에너지까지 아내한테서 다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컸다. 그래서 아내가 무조건 자신에게 잘해주기만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내 역시 사랑과 의존에 대한 욕구를 남편이 채워주기만을 바랐으니 문제가 생겨나는 것이 당연했다.
원만한 결혼생활을 위해선 서로의 심리상태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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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순 신경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