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강을 보라,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그 근원인 바다로 들어가지 않는가.’ 강은 한 방울 물에서 시작해서 작은 개울을, 또 수천 개의 지류를 받아들입니다. 폐수가 들어와도 이를 거부하지 않고 모든 것을 다 껴안고 내려 가면서 스스로 정화해 가지요. 사람의 일생도 강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다만 흐르는 것과 올라가는 것을 착각하는 것이 문제이지요.”
한강 1300리 물길. 시속 80km의 자동차로 6시간 반이면 돌아볼 수 있는 이 길을 한발 한발 디뎌 16일 동안 걸은 이 사람, 신정일(48·황토현문화연구소장·사진)씨. 한강을 따라 걸은 그의 자취는 ‘한강역사문화탐사’(생각의나무)에 오롯이 담겼다.
그는 왜 강을 따라 걷고 싶어했을까. 신씨는 지난 92년부터 한국의 10대 강을 시민들과 함께 걷는 답사를 기획했다. 차를 타고, 역사나 경치 위주로 답사를 다니다 보니 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걷기로 했다.
“걷는 것과 생각하는 것은 절묘하게 연결되는 개념입니다. 걸으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궁극적으로는 전체를 볼 수 있게 되지요. 한강을 따라 걸어가면서 강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과 모든 사물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법을 깨닫고 싶었습니다.”
걸으면서 만나본 한강은 중병을 앓고 있었다. 식수원이라 쓰여진 게시판 옆에는 폐타이어가 잔뜩 쌓여 있었다. 어느 폐광에서 나오는 물은 고스란히 한강으로 흘러들어갔다. 동강에서 하는 래프팅을 보고는 고개가 절로 흔들어졌다. ‘어디 물고기들이 정신 사나워서 살 수 있겠나.’
그래도 강은 푸른 물빛과 깊은 사연을 간직하고 흘러간다. 봉정리 마을 강변, 버들강아지가 늘어진 맑은 강에는 푸른 소나무들이 더 푸르게 가라앉아 있다. 물 속에 잠긴 산이 더 아름답다. 또 지류들이 합류하는 지점에서는 소나무 사이로 한강물이 휘감아 돈다. 정선아라리의 고향인 아우라지 강가에서는 아직도 뱃사공이 강을 건너게 해준다.
요즈음 그는, 좀처럼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는 ‘나루터’의 모습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2급 기관사 자격증이 있어야 나룻배를 운영할 수 있다고 그럽디다. 아우라지의 할아버지 뱃사공 말고는 이제 아무도 없어요. 안동의 하회마을도 배타고 부용대에 건너가서 봐야 한 눈에 마을이 들어오는데 이제 부용대에 못 가잖아요. 영국여왕도 부용대는 못 가봤지요. 잘 운영하면 관광 수입도 많이 거둘 수 있을텐데….”
깊숙한 곳, 눈여겨 보지 않으면 그저 지나치고 마는 우리의 ‘젖줄’에 오래도록 천착해 온 그는 10월 중순, 영산강을 따라 걸을 예정이다. 북한에 있는 강도 늘 잊지 않고 있다.
“사람들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고 얘기들 하지만, 대부분 ‘한국’은 없고 ‘세계’만 있지 않습니까. 우리 것을 우리가 발굴하고 보존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습니까. 숨어 있는 것을 끄집어 내는 것은 일종의 복원 작업이면서 동시에 내 삶이 지향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