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유엔본부 앞에서 환하게 웃는 홍주선씨 - 유엔본부=홍권희특파원
평화유지군을 비롯한 유엔의 각종 활동에 쓰일 돈이 유엔본부에서 나가려면 경영관리국(UNDM) 자금부 홍주선(洪周先·39)씨의 사인이 필요하다. 그는 자금부장을 포함한 유엔 지출관리자 4명 중 1명이다. 각종 활동비와 프로젝트 비용 등 수백개의 계좌를 운용 관리하는 것이 주업무다. 10년째 유엔본부의 자금줄을 맡고있는 그가 평소 관리하는 돈은 10억달러 규모.
“분쟁지역이나 은행도 없는 오지에서 활동하는 유엔 요원들에게 활동비와 급여 등 100만∼500만달러씩을 보낼 때는 007작전을 벌이기도 합니다. 암호팩스를 사용해 송금계획을 알립니다. 무장 군벌들이 있는 지역으로 돈을 보낼 때는 날짜를 수시로 바꾸죠. 미국의 현금수송서비스회사 직원이 직접 달러를 운반해주기도 하는데 이럴 때는 사고보험에 듭니다.”
유엔 활동의 큰 줄기는 달러의 흐름을 통해 그의 안테나에 포착된다. 공식발표가 나오기에 앞서 예정에 없던 거액의 자금이 조성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평화유지군이 곧 대대적인 활동에 들어가겠구나’하고 짐작한다. 본부에서 근무하지만 항상 현장 상황에도 촉각을 곤두세운다.
▼글 싣는 순서 ▼
- ①유엔 정무국 이라크문제 담당 차기호씨
“지난해 6월 아프리카 케냐의 유엔환경계획(UNEP)과 에티오피아의 아프리카경제위원회(ECA)에 출장을 갔습니다. 현지 직원들에게 효율적인 자금관리 소프트웨어 사용법을 가르치느라 한달간 머물면서 유엔의 깃발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꼈어요. 전화나 팩스로 연락할 때는 몰랐는데 그곳의 유엔 직원들이 참 고맙게 생각되더군요.”
화려한 조명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오지나 주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분쟁지역에 나부끼는 유엔 깃발. 그리고 그 아래의 젊은 유엔요원들. 안팎에서 ‘사무국이 관료주의에 빠져있고 일은 줄어도 자리는 줄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현장에선 유엔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할 수 있다. 홍씨는 그 때의 감동에 끌려 현장 근무를 자원할 것을 고려 중이다. “‘국제공무원’ 생활 10년이 다 돼가니까 다른 종류의 일을 해보려고요. 평화유지군이 있는 현장으로 나갈까 생각 중입니다. 리스크관리 자금관리 경험을 살려 한국의 국제금융 분야에서 일할 수도 있겠고요.”
유엔 직원 골프모임에 참여해 각국 출신 직원들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 것도 홍씨의 유엔 생활에 있어서 즐거움 중의 하나다.
유엔본부〓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국제공무원이란▼
유엔 직원은 스스로 국제공무원(International Civil Servant)이라고 부른다. 국제기구 직원은 자국여권과 유엔여권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일부 예외가 있지만 유엔여권으로 어디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 사무국의 전문직(P직급) 이상 직원은 회원국 정부 중 가장 높은 보수를 받는 국가공무원에 상당하는 보수를 받는다. 현재 보수는 미국 연방공무원에 비해 20∼30% 더 높다. 보수 기준과 금액 등은 유엔사이트(www.un.org/Depts/OHRM/salaries…allowances/index.html)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홍주선씨는▼
▽1962년 서울 출신
▽학력〓부산중앙여고, 서울대 경영학과, 서울대 경영대학원(석사)
▽경력〓쌍용투자증권, 도이체방크 서울지점, 체이스맨해튼은행 서울지점 근무
▽유엔 지원 동기〓1992년 한국의 유엔 가입 후 한국인 직원 모집공고를 보고 재경직에 지원했다. 한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친 유엔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 최종 합격 후 한달 만에 자금부에서 일하라는 연락이 왔다. 해오던 일이었고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이라는 주변의 권유도 있어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유엔 근무여건〓초기엔 정규직원이 4명이어서 일이 많았다. 지금은 직원이 9명으로 늘었고 경험이 많이 쌓여 업무 부담이 큰 것은 아니다. 보통 오전 9시부터 오후 5, 6시까지 일한다.
▽유엔 지원자에 대한 조언〓영어 등 외국어 실력이 뒷받침되면 여러 경로로 자리를 잡기가 쉬워진다. 대학이나 대학원 재학 중 인턴으로 일을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평소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