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스님이 가을 숲길을 걷고 있다. 가을이 되면 출가를 결심하고 산사를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 사진제공 현진스님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우리 절 원주(院主·공양간 살림을 담당하는 소임)스님의 걱정이 하나 늘었다. 그 걱정은 다름 아니라 출가하기 하기 위해 입산하는 행자(行者)들이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해인사는 큰절답게 행자 걱정을 하지 않고 지냈는데 한 달 사이 행자실의 식구들이 평소보다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어느 산중 할 것 없이 ‘입산 후보생’인 행자들의 발길이 끊어지면 그 원망과 책임은 원주스님이 듣게 된다. 행자들을 보살피는 원주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덕이 모자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생기면 열심히 살림하고 있는 원주 스님으로서는 억울한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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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원주스님은 대책을 강구해야 하고 행자 증원의 묘수를 찾아야 한다. 해인사는 전통적으로 행자들이 잘 들어오지 않을 때 행하는 의식이 있다. 그것은 가야산 중턱의 마애불에 공양을 올리는 일이다. 이 방법은 일종의 응급조치에 해당하는 처방인데 신통하게도 영험이 바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공양 올린 다음 날이면 정말 신기하게도 입산의 뜻을 밝히는 이가 찾아온다.
그런데 해인사는 이상한 징크스가 있다. 마애불에서 기도한 다음 날 들어오는 행자는 정신이 약간 모자라거나 며칠 견디지 못하는 인내심 약한 행자라는 점이다. 이와 달리 국사단(局司壇·도량을 수호하는 대신-大神-을 모신 곳)에 공양을 올리면 똑똑하고 쓸모 있는 행자가 들어온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아래 절인 비구니 암자에서는 행자 들어오게 하는 처방으로 공양간 부지깽이를 아궁이 입구에 세워놓는다고 한다. 알고 보면 절마다 ‘행자모집’ 에 관한 나름의 독특한 비법이 전해오는 셈이다.
이런 처방으로 온 행자가 아니더라도 해인사에서 출가하려는 이들은 행자 생활의 첫 관문인 ‘3000배’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고 출가를 쉽게 포기하는 것도 행자실이 텅 비는 원인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3000배를 줄이든지 없애자는 제안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해인사의 전통을 고수하자는 여론이 더 많다. 모르긴 해도 3000배를 포기하는 이들은 육체적으로 힘들어서가 아니라 마음의 정리가 덜 된 것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입산하는 이들에게는 계절적으로 낙엽 지는 가을이 한 몫을 한다. 만추의 고독과 사색이 많은 이들의 발길을 산사로 옮기게 만드는 배경이 되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을의 이러한 현상은 일시적인 충동에 가깝다. 겨울이 오기 전에 입산하던 그 길을 따라 대부분은 집으로 돌아간다.
이제 곧 가을이 깊어지고 낙엽이 쌓이기 시작하면 원주실(院主室) 문 앞에서 출가를 망설이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 때쯤이면 우리 원주스님의 주름도 펴질까.
해인사 포교국장 budda122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