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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상선 미스터리]4900억 대출 정권실세 ‘작품’ 의혹

입력 | 2002-10-06 19:31:00


2000년 6월 대출 당시 주요인사와
2000년8월 개각내용  2000년 6월2000년 8월내각 경제팀재경부 장관이헌재진념재경부 차관엄낙용이정재기획예산처장관진념전윤철공정거래위원장전윤철이남기금감위원장이용근이근영청와대비서실장한광옥한광옥경제수석이기호이기호산업은행총재이근영엄낙용관리본부장박상배박상배문화부장관박지원박지원

2000년 6월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4900억원을 대출하는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것 가운데 하나는 ‘내각 경제팀’의 핵심부처인 재정경제부 고위간부들이 이를 몰랐다는 점이다. 통상 국책은행의 대출은 소규모라 하더라도 재경부와 사전보고 및 협의를 거친다는 점에서 극히 이례적이다.

이 대출과 관련해 현재까지 거명된 주요 인사들은 당시 직책 기준으로 △청와대의 한광옥(韓光玉) 대통령비서실장과 이기호(李起浩)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산은의 이근영(李瑾榮) 총재와 박상배(朴相培) 관리본부장 △박지원(朴智元) 문화관광부장관 △김보현(金保鉉) 국가정보원 3차장 등이다.

이는 현대상선에 대한 대출이 경제논리보다는 다른 이유에 의해 이뤄졌을 가능성을 내비치는 대목이다. 누가 대출을 주도했는지에 따라 돈의 사용처가 달라지고 이번 의혹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재경부 고위간부들도 몰랐다〓최근 밝혀진 여러 증언을 종합하면 재경부는 2000년 6월 산은의 현대상선 대출 논의에서 사실상 소외됐다.

당시 재경부차관인 엄낙용(嚴洛鎔)씨는 같은 해 8월 산은 총재로 옮겨간 뒤에야 이를 알고 당황해 이 경제수석비서관과 김 3차장에게 상의했다.

이근경(李根京·현 금융통화위원) 당시 재경부 차관보도 6일 “당시 산은에서 현대상선에 대출하는 자체를 몰랐고 산은으로부터도 보고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재경부차관과 차관보가 산은에서 돈이 나간 사실 자체를 몰랐다는 것은 정상적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더구나 대출액이 무려 5000억원에 가까운 거액이고 현대는 당시 경제정책의 가장 주요한 현안인 구조조정의 한 복판에 서 있던 그룹이었다.

▽커지는 정권 실세(實勢)개입 의혹〓엄씨가 4일 국정감사 증언에서 “2000년 8월 이근영 금감위원장이 ‘한 대통령비서실장의 전화가 와서 (현대상선 대출을)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고 폭로한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엄씨의 증언이 위증이 아니라면 대출 결정의 중심에 청와대 등 권력핵심부가 있었다는 뜻이다.

이 대출을 실무적으로 주도했던 박상배 산은 본부장(현 산은 부총재)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 정부 출범 후 급부상한 그는 이기호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의 고교(광주일고) 및 대학(서울대 상대) 동기동창. 당시 ‘이사’에 불과했으나 현 정권 실세들과 친분이 깊어 총재도 함부로 못했다는 후문이다.

▽2000년 6월과 8월의 ‘경제팀’ 멤버들〓 현대상선 대출시점인 2000년 6월과 청와대 대책회의가 열렸던 같은 해 8월의 경제팀과 산은 멤버에는 일부 차이가 있다. 2000년 8월7일 개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0년 6월 당시 내각의 경제팀에는 이헌재(李憲宰) 재경부 장관, 진념(陳稔) 기획예산처 장관, 이용근(李容根) 금감위원장, 전윤철(田允喆) 공정거래위원장이 포진해 있었다. 또 재경부차관은 ‘한 비서실장 지시설’을 폭로한 엄씨였다.

2000년 8월7일 개각으로 진념씨가 재경부장관으로 옮겨갔다. 또 전윤철씨가 예산처장관, 이남기(李南基)씨가 공정거래위원장을 각각 맡았다. 이근영씨가 금감위원장으로 영전하면서 후임 산은 총재에 엄씨가 임명됐다. 다만 한광옥씨와 이기호씨는 두 시점 모두 대통령비서실장과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을 맡고 있었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천광암기자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