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 서해교전 당시 북한경비정의 기습공격을 받고 침몰됐다가 인양된 아군 고속정 357호. 동아일보 자료사진
5일자로 보직해임된 5679부대(북한통신감청부대) 한철용(韓哲鏞·소장) 전 부대장은 6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서해교전 직전 북한의 도발가능성을 포착했다는,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은 새로운 증언을 했다.
교전 직전인 6월 13일과 27일, 북한군 상부가 일선부대에 도발지시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는 각각 8자(字), 15자의 북한군 교신내용을 감청했다는 것이다. 한 소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두 차례나 ‘결정적 첩보’를 보고했지만 당시 김동신(金東信) 국방부 장관과 군 수뇌부가 묵살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 같은 사실을 폭로한데 대해 “결코 사리(私利) 차원의 돌발행동이 아니며 군인의 명예를 걸고 진실을 가리기 위해 결심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국방부는 교전 직전 도발을 예상할 만한 징후가 없었다고 발표했는데….
“4일 국회 국방위 국감에서 북한경비정의 북방한계선(NLL) 침범 의도를 분석한 3개항의 ‘부대의견’ 외에 6월 13일과 27일에는 도발징후가 들어 있는 북한군 상부의 특이한 교신 내용을 감청해 보고했다. 거기에는 99년 연평해전 이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어휘들이 포함돼 있었다. 심상치 않게 여겨 매번 정보본부에 그대로 보고했지만 이후 예하부대에 전파된 ‘블랙북’(북한첩보 일일보고서)에는 그 내용이 삭제된 채 ‘단순침범’으로 전파됐다.”
-특이한 교신내용이란 무엇인가.
“군사기밀이라 밝힐 순 없지만 북한의 도발징후의 강도가 매우 높은 ‘팩트(fact)’였다. 군 정보도 기본적으로 ‘팩트’가 담겨 있어야 좀 더 명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 만약 이 징후들이 예하부대에 그대로 전파됐다면 북측의 중대한 돌발사태를 예상하고 대비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관과 군 수뇌부가 ‘특정한 의도’를 갖고 부하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 바람에 예하부대는 ‘단순침범’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특정한 의도란 무엇인가.
“직접 언급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교전을 전후해 장관과 군 정보수뇌부가 보여준 태도는 나라를 지키는 군인 본연의 자세가 아니었다. 잇단 ‘중요첩보’에도 불구하고 단순침범으로 몰아 하급부대에서 ‘헛손질’을 했고 이 때문에 도발에 대처하지 못한 것이다.”
-‘결정적 첩보’를 뺀 사람은 누구라고 보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나는 모든 첩보를 정보본부장을 통해 장관에게 보고했다는 점이다. 본부장이 상관의 지시없이 첩보를 삭제한다는 것은 군 조직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 장관이 지시했거나 적어도 묵인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2가지 팩트(13일과 27일의 교신내용)는 매우 민감하고 예민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당시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것이다.”
-북 도발의 결정적 증거에 대한 군 내부의 논의는 없었나.
“교전 2주 전쯤인 6월 14일 권영재(權寧載) 국방정보본부장, 김군식(金軍植) 정보사령관, 권영달(權榮達) 군사부장, 정형진(丁亨鎭) 정보융합실장 등과 나를 포함해 군 정보수뇌부들이 모여 13일 북한경비정의 NLL 침범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나는 북측교신 내용의 특이징후와 미군이 북한군의 움직임을 촬영한 항공사진을 제시하며 ‘북이 도발행위를 할지 모른다. 좀더 임무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6월 1일부터 좋아하는 골프도 하지 않고 상황을 주시 중이라고 보고했다.”
-항간에서는 한 소장이 진급과 징계에 대한 불만 때문에 돌출행동을 한 것이라고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진급에 불만이 있으면 진작에 얘기했지 왜 지금 물고늘어지겠나. 평소 진급은 하늘의 뜻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비극의 책임은 하급부대의 중요첩보를 무시한 김 전 장관과 수뇌부에 있는데 오히려 나와 부하들을 조사해 징계결정을 내렸다. 그야말로 도둑놈이 매를 든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왜 임무를 다한 부하들을 짓밟는가.”
-정치권과의 사전교감설도 나온다.
“분명히 말하지만 국회의원 누구와도 만난 적이 없다. 정치적인 의도 또한 없다. 교전 다음날인 30일경 군 일각에서 우발적 사태로 몰고 가기에 정보융합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13일과 27일 두 차례의 첩보만 봐도 (북한의 도발이) 상부의 지시라는 게 충분히 예상되는데 왜 그렇게 판단하느냐’고 따졌다.”
-자신의 결정에 후회하지 않나.
“내가 보직해임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러나 결정에 따를 것이다. 불복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결코 돌출행동이 아니다. 7월 10일 징계를 받으러 다음날 국방부로 오라는 연락을 받고 ‘나는 그런 징계 못 받는다. 차라리 전역하겠다’며 전역지원서를 낼 때부터 진실을 밝혀야겠다고 결심했다.”
-국방부 조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보나.
“확신한다. 당시 장관에게 보고된 첩보내용과 예하부대에 전파된 블랙북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조사과정에서 군 기밀인 블랙북의 첩보내용도 확실히 검토할 것이므로 진실은 드러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일부에서 장군이 군 기밀을 공개했다고 비난하는데 나는 기밀내용을 말한 적이 없다. 진실을 말했을 뿐이다. 교전 이전 분명 특이징후가 있었지만 이를 묵살한 것이 장관과 정보본부장이다. 우리 부대는 99년 연평해전 때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이번 서해교전이 발생하기 전에도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햇볕정책’도 국방이 뒷받침될 때 가능한 것이다. 특정한 의도 때문에 군이 영향을 받아선 안 된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