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 3쿠션 캐롬 단식경기에서 세계 3쿠션계의 ‘지존’ 이상천을 누르고 금메달을 따낸 황득희가 볼을 매섭게 응시하며 경기에 집중하고 있다. 부산연합
‘혈관에 얼음물을 담고 있는 선수.’
뉴욕타임스지가 1999년 ‘○○○계의 마이클 조던’이라는 제목으로 각계 세계 최강자들을 소개하는 기사에서 당구 3쿠션 캐롬의 이상천(미국명 상 리·48)에게 붙인 별명이다. 플레이 도중 얼굴 표정에 변화가 없고 한 번 승기를 잡으면 놓치는 법이 없어 상대 선수를 주눅들게 한다는 뜻이다.
미국 뉴욕에서 거주하는 ‘당구 지존’ 이상천은 태극마크를 달고 고국에서 열리는 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왔다.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에 입학한 수재였던 이상천은 뒤늦게 당구의 맛에 빠져 학교를 중퇴하고 당구에 매진해온 ‘괴짜’. 그는 87년 무일푼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90년부터 내리 전미당구선수권 챔피언자리를 지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93년 세계프로당구협회(BWA) 챔피언에 오르며 세계무대를 평정했고 월드컵 이벤트에서만도 4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이상천은 지난해 뉴욕 퀸스지역 리든플레이스가에 800여평짜리 세계 최대 규모의 당구장 겸 카페 ‘카람’을 여는 등 뉴욕에만 4개의 대형 당구장을 차려 사업가로도 성공했다.
그는 평소 입버릇처럼 “한국선수 중 나를 뛰어넘는 선수가 나올 때까지 선수생활을 하겠다”고 말해왔다.
7일 부산 동주대체육관에서 열린 3쿠션 캐롬 단식 결승전. 이상천의 상대는 그보다 14세나 어린 황득희(34)였다. 그러나 황득희는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오히려 ‘지존’ 이상천을 시종일관 압도해나갔다. 이상천은 24-50으로 완패를 당했다.
하지만 이날 패자는 없었고 승자만 둘이었다. 경기가 끝나자 이상천과 황득희는 뜨거운 포옹을 나눴고 황득희는 연습기간 중 그를 정성껏 지도해준 대선배 이상천에게 허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했다.
이상천은 “개인적으론 섭섭하긴 했지만 한가지 소원을 풀어서 기분은 좋네요”라며 패자답지 않게 껄껄 웃었다. 역시 고수였다.
부산〓전 창기자 j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