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와 흥겨운 음악, 놀이시설이 어울리는 뮌헨의 ‘옥토버페스트’는 2주동안 600여만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유럽대륙 최대규모의 축제다. AP연합
1810년 10월, 바이에른의 왕 루트비히 1세는 수도 뮌헨에서 작센의 테레지아 공주와 결혼식을 올렸다. 경마와 민속의상 행렬이 어우러진 닷새동안의 축제가 열렸다.
1811년 10월, 루트비히 왕은 심심했다. 신하들도 심심했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말마따나, 권태는 창조를 낳는다. 처음 외친 것은 누구였을까, 왕이었을까? “올해도 놉시다!”라고.
2002년 10월, 뮌헨의 테레지아벌판(Theresienwiese). 6일 막을 내리기까지 2주동안 계속된 ‘옥토버페스트’의 현장이다. 맥주회사 뢰벤브로이가 마련한 천막 안팎에 9000명의 내외국인이 들끓고 있다. 밴드가 30여년전의 히트곡 ‘아이오 아이오’를 맹렬한 기세로 연주하자 남녀 주당들이 일제히 일어나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이건 미친 짓이다.” 스위스 루체른에서 왔다는 옆자리 청년이 소리질렀다. “그래서 좋은 거다.” 기자가 대꾸하자 그가 되받았다. “바로 그거다(Gen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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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축제란 철이 없어야 한다. 황소가 길을 질주하고, 누구나 손에 잡히는 대로 토마토를 던져대는 유럽의 축제들에서 ‘이성’을 찾아선 곤란하다. 그러고 보면 축제의 창시자로서 루트비히 왕은 최고였다. 이 철없는 왕은 당대 뮌헨 미녀들을 불러모아 초상화를 그리고 님펜부르크 궁전의 한 방에 몽땅 쓸어 넣은 뒤 ‘어 좋다!’하며 즐기기도 했다. 이 ‘미인 갤러리’는 오늘날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그가 만든 축제가 그런 것처럼.
옥토버페스트 또한 꽤나 사람을 철없게 만든다. 각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은 독일인들의 시범에 따라 중세 대학생들의 전통에서 비롯된 어깨동무와 합창의 ‘의식’을 재현해야 한다. 월드컵 응원처럼 일어섰다 앉았다 정신이 없다. 축제의 또다른 주역은 어린이다. 천막 밖의 광대한 공간에는 롤러코스터며 범퍼카를 비롯한 놀이시설들이 가족단위 여행객의 옷깃을 붙잡는다. 깨진 맥주병이 발 끝에 차여도 별로 개의치들 않는 눈치다.
올해 테레지아벌판에는 10개의 맥주회사가 뢰벤브로이와 비슷한 규모의 천막을 쳤다. 같은 시간 맥주를 들이키고 있는 사람의 숫자가 10만명을 어림한다는 얘기다. 1999년 ‘비즌’(바이에른 토박이들이 옥토버페스트를 일컫는 이름)에는 2주동안 680만명이 몰려들었다. 뮌헨에서 기차로 2시간 남짓 거리인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의 국민 수와 맞먹는다. 올해 ‘비즌’ 첫주는 끊임없이 내린 비 때문에 방문객이 지난해보다 20만명이나 적었지만, 주말인 9월 28,29일의 화창한 날씨 덕에 9월 30일까지 지난해보다 6분의1이나 많은 200만리터의 맥주가 소비됐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문화사가와 민속학자의 말을 굳이 빌지 않더라도, 축제의 숨은 기능은 긴장과 규범으로부터의 해방에 있다. 규범과 질서의 미덕을 간직한 독일이기에 해방의 절차도 이토록 떠들썩한 것일까. 텐트 한쪽 어둑한 구석에서는 가죽바지 차림의 청년이 가슴파인 전통의상 차림 처녀의 입술을 탐하고 있다. 바바리아 여신상 부근의 언덕에는 술취한 관광객들이 늘어져 코를 골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탈 안쪽에는 ‘질서’가 도사리고 있다. 최소 200만명이 몰려든 축제 첫주 지역 일간지를 장식한 축제관련 사고란 ‘한 청년이 서둘러 축제장소로 가기 위해 역에서 선로로 뛰어들었다가 발목을 다쳤다’ ‘한 미국인 여성이 관광용 마차 아래서 겁탈당할 뻔 했으나 화를 면했다’라는 단 두 가지에 그쳤다.
‘혼자놀면 심심하니 백성과 같이 놀자’는 루트비히왕의 발상이 그만의 것은 아닐 터이다. ‘여민락(與民樂)’이라는 우리 전통음악의 제목도 ‘함께 축하함’으로서 나누고 보태는 잔치의 정신을 담고 있다. 선농단(先農壇)에서 제사를 지낸 뒤 고기를 끓여 온 백성이 나누어먹었다는 ‘설렁탕’의 유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외국의 강점과 강요된 근대화, 수탈과 전쟁을 겪은 때문인지 우리에게 이런 ‘대동(大同)’의 제사 또는 축제는 사라진 지 오래다. 서둘러 마련 또는 복원된 숱한 지역축제들마다 공연자와 구경꾼, 장사꾼은 제각기 ‘따로 논다’. 제각기 서로 구경꾼이 되고 광대가 되는, 알아서 맥주회사의 잇속을 채워주면서도 저마다의 즐거움을 찾는 ‘비즌’과 같은 축제는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너무 철이 들어서일까.
뮌헨〓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