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의 한 증권사 객장에서 투자자가 '뚝' 떨어지고 있는 주가 그래프를 보고 있다. - 도쿄AP연합
《일본 도쿄(東京)증시에 대기업 은행 연쇄 도산 공포가 불어닥치면서 닛케이 평균주가가 7일 또다시 19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연일 폭락세를 거듭하고 있다. 이는 지난달 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이 새 진용을 갖추면서 “부실채권 처리를 본격화하겠다”고 공언하고 있기 때문. 특히 공적자금 투입과 부실채권 처리를 강력히 주장해 온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 경제재정상이 금융상까지 겸직하며 막강한 권한을 장악하자 기업과 은행들은 “올 것이 왔다”며 두려움에 떨고 있다.》
▽닛케이 이틀 만에 최저치 경신〓닛케이주가는 3일 8,936.43엔으로 19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한 데 이어 7일에는 전날보다 339.55엔(3.75%) 떨어진 8,688엔으로 영업일 기준 이틀 만에 또다시 기록을 경신했다. 닛케이주가가 8,700엔선이 붕괴된 것은 19년 4개월 만이다.
이날 증시에서는 지난주 말까지 비교적 견고했던 우량기업주들까지도 하락세로 돌아서는 등 거의 대부분의 종목에 매도주문이 몰렸다.
이는 정부가 부실채권 처리를 가속화할 경우 경기가 악화되고 고용이 불안해질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미국 뉴욕 증시의 부진,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대한 우려 등도 악재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살생부(殺生簿)’ 소문 흉흉〓다케나카 경제재정상의 금융상 겸직과 함께 경제계를 긴장시키는 것은 민관합동 금융긴급전략 프로젝트팀 멤버에 기무라 쓰요시(木村剛) KPMG파이낸셜 사장이 기용된 것.
일본은행 출신인 그는 지난해 부실채권 처리를 촉구하며 정리 대상인 30대 부실기업을 지목한 이른바 ‘살생부’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 본인은 ‘30사 리스트’의 존재를 부인했지만 그가 발언권을 행사할 경우 대기업 연쇄 도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다케나카 금융상도 6일 “가망 없는 기업이 퇴장하는 것은 자본주의 원칙이다. 대기업이라고 해서 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고 밝힌 데 이어 7일에도 “4대 대형 은행도 경우에 따라서는 파산 처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혀 파문이 계속 확산되고 있다.
부실채권을 정리하면 부실 기업들은 은행에서 자금을 추가 지원받기 어렵기 때문에 도산이 불가피하다. 또 은행들은 부실채권을 포기하고 손실로 처리하면 자기자본 비율이 낮아져 재무구조가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공적자금 투입 임박했나〓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부실채권 처리시 금융 불안을 막기 위해 공적자금 투입을 적극 추진 중이다. 당초 새로운 법안 마련을 추진했으나 시간이 촉박해 현행법으로 공적자금 투입을 서두르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고이즈미 총리가 의장을 맡고 있는 경제재정자문회의는 7일 저녁 회의를 열어 내년 4월로 예정된 전면적인 예금 부분보장제 도입을 2년 연기하기로 최종 확정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1998년, 99년에도 무려 9조48억엔(약 90조원)의 공적자금을 쏟아 붓고도 부실채권은 정리하지 못한 채 오히려 경기침체를 만성화시킨 전례 때문에 이번에도 투입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철저한 부실 처리와 구조 개혁이 뒤따르지 못하면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낳고 부실기업을 연명시키는 결과만 낳는다는 것.
또 금융부문에 칼을 대고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는 디플레만 가속시킨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도쿄〓이영이특파원 yes20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