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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문명호/장애아동 교육권

입력 | 2002-10-07 18:25:00


루트비히 판 베토벤, 헬렌 켈러, 프랭클린 루스벨트, 스티븐 호킹…. 모두 ‘성공한’ 장애인들이다. 세상의 많은 부모들은 역경을 딛고 우뚝 선 이들을 자신들의 자녀들이 본받아야 할 표상으로 삼고자 한다. 그러나 장애인문제 전문가들 가운데는 장애인을 거론할 때 이처럼 ‘저명한’ 장애인을 언급하는 일에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이 없지 않다. 암묵적으로 장애인들에게 비장애인보다 더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스스로 사회적 장애를 극복하길 강요하는 것과 다를 바 없고, 그 과정에서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묻히기 쉽다는 것이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단체 명칭을 영어로 ‘Korea Differently Abled Federation’으로 적는다. 영어권에서 ‘불구자(handicapped)’, ‘장애인(disabled)’ 등으로 불려오다 이제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differently abled)’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단체의 우리말 명칭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장애인’을 대체할 다른 용어가 통용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회사원 박모씨(36)가 5일 장애인인 딸(7)의 입학을 거부한 서울의 S유치원과 관할 관청인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박씨는 지난해 말 정신지체장애 3급인 딸을 한 종교재단이 운영하는 이 유치원에 입학시키려 했으나 유치원측이 “다른 아이들에게 방해가 된다”며 거부했다고 진정이유를 밝혔다. “장애를 이유로 유치원 입학 기회를 박탈한 것은 명백한 차별이자 교육권 침해”라고 박씨는 주장한다. 그저 딸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남들과 같은 대접만 받게 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유치원으로서도 고충은 있을 것이다. 일손도 더 필요할 것이고, 부모들 중에는 ‘내 아이가 굳이 장애아동과 어울려서 좋을 게 뭐가 있겠느냐’고 마뜩찮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입학 거부의 이유는 되지 못한다.

▷우리나라 장애인의 90%는 태어난 후 각종 사고와 질병 등 후천적 원인으로 인해 장애인이 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언제 내가, 내 가족이 장애인이 될지 모르는 일이다. 내 가족이 장애인이 된 후에도 내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 장애아동은 곤란하고 우리 동네에는 장애인 시설이 오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기주의는 내 이웃을 해치기 전에 나를 해친다. 장애인은 ‘우리와 다른 사람’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와 다른 사람’일 뿐이다.

문명호 논설위원 munmh9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