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을 앞둔 안계평야 앞에서 박씨 부부가 풍년농사를 기뻐하고 있다. - 의성=이권효기자
“누렇게 익은 벼를 보면 가슴이 뜁니다. 쌀 시장 개방도 두렵지 않아요.”
수확을 앞둔 넓은 황금색 벌판을 바라보는 박창식(朴倉植·45·경북 의성군 단북면) 이영애(李永愛·43)씨 부부의 표정은 자신에 차 있다. 물려받은 땅 한 평 없던 박씨 부부가 2만평의 부농(富農)으로 변신하는데는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너무 가난했어요. 이를 악 물고 지난 15년 동안 다른 사람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며 흙과 함께했습니다. 94년 황무지 1200평을 논으로 만들었을 땐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초등학교만 나온 박씨는 22세 때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 공장을 전전했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았지만 살아가기가 막막했다. 결국 86년 가족을 이끌고 귀향을 선택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어요. 땅 한 평 없는 가난을 원망도 많이 했고요. 문중 소유 산을 개간해 마련한 밭 2800평을 밑천 삼아 조금씩 땅을 불렸습니다. 너무 힘들어 아내는 지쳐 쓰러지기 일쑤였지요.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이후 생긴 ‘쌀전업농’제도를 이용하고 농업기반공사를 통해 영농자금을 빌렸다 갚으면서 땅을 키워왔습니다.”
비옥한 의성 안계평야에 박씨 부부가 소유한 논은 이제 1만9000평에 이른다. 다른 사람의 논 4000평까지 빌려 벼농사를 짓고 있다. 올해 예상되는 소득은 1억여원.
부농의 꿈을 실현하고 있는 박씨 부부에게도 쌀시장 개방은 걱정거리다. 시장이 개방되면 현재 80㎏ 한 가마에 16만원 선인 쌀값이 절반 이하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황무지를 일궈온 날들을 생각하며 시장개방에 대비해야지요. 친환경 고품질 쌀을 생산해 경쟁력을 키우면 외국쌀도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정부는 완전기계화 영농이 되도록 기반을 구축하고 농자재 가격도 안정시켜 농민들이 열심히 일하는 만큼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합니다.”10일부터 벼 수확에 나서는 박씨 부부는 ‘자식’ 같은 들판을 바라보며 ‘또 다른 도전’을 약속했다.
의성〓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