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이 아무리 침체에 빠져도 돈 벌 수 있는 틈새는 있다. 개인 투자자들은 그 틈새를 찾지 못하고, 뮤추얼펀드는 틈새를 알아도 엄격한 자산운용 규정에 얽매여 돈을 잃는다.
하지만 헤지펀드는 귀신처럼 틈새를 찾아내 돈을 번다. 주식 채권 환(換)은 물론 선물·옵션과 부동산 등에 발빠르게 옮겨 타면서 주가는 떨어져도 플러스 수익률을 낸다. 97년 아시아 금융위기나 9·11테러, 최근의 주가 폭락에서도 수익을 올리는 헤지펀드 매니저. 그들은 틈새의 사냥꾼이다.
뉴욕 맨해튼 49가에 있는 패러다임글로벌의 제임스 박 사장(40)은 전혀 색다른 틈새를 개척하고 있다. 전 세계 4000여개의 헤지펀드 가운데 수익률이 높고 수익률의 표준편차가 적은 펀드 75개에 투자하는 ‘헤지펀드 펀드(fund of hedge fund)’를 고안해 낸 것.
이렇게 해서 박 사장이 올해 1∼8월에 올린 수익률은 1.26%. 미국의 S&P500지수가 같은 기간 19.2% 떨어진 것과 비교하면 대단한 수익률이다. 최근 3년 및 5년간 누적수익률도 각각 25.8%와 45.1%로 S&P500지수(각각 -29.81%, 6.09%)를 크게 웃돈다.
미국에서 태어난 이민 2세인 박 사장은 워튼스쿨에서 경영학석사(MBA), 하버드대에서 법학박사를 땄다. 이어 컬럼비아대 비즈니스스쿨에서 89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헤지펀드에 관한 논문을 써 경제학 박사가 되었다.
박 사장은 “‘헤지펀드 펀드’는 뮤추얼펀드라는 이론을 현실에서 검증하기 위해 패러다임을 설립했다”고 말했다. 패러다임의 펀드 규모는 현재 11억달러. 그는 “패러다임을 100억달러 이상으로 키워 마젤란펀드 같은 대표 펀드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외환위기 때 한국 주식과 채권을 많이 사들여 익숙해진 애팔루사자산운용의 전우진 이사(41)도 틈새 사냥꾼이다. 6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 30대 기업에 들었던 천우사의 전택복 회장이 그의 조부. 연세대 기계공학과를 다니다 미국 시라큐스대에서 MBA를 땄다. 88년부터 14년째 월가에서 활동하고 있다.
전 이사는 “외환위기로 주식 채권 환이 폭락한 틈을 1조원 이상으로 과감하게 공략해 엄청난 이익을 올렸다”며 “최근 한국 주가가 많이 떨어져 투자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밝혔다.
25억달러 규모인 디스커버리캐피탈의 전용범 전무(40)도 틈새를 찾기 위해 4일 한국을 찾았다. 1주일 동안 내수 중형주를 집중 발굴할 계획. 그는 미국 증시가 안정되면 가장 탄력 있게 상승할 수 있는 곳이 한국이라고 본다. “남이 팔 때는 긍정적으로 보고 남이 살 때는 의심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
그는 “외환위기 때 한국 자산이 헐값에 팔려나갔지만 지금은 한국 상황이 상대적으로 좋아 월가의 인재나 자산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라며 “10년 뒤에는 한국의 부(富) 가운데 40%는 해외에 투자될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홍찬선기자 hc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