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칼라들이 전례 없이 잘려 나가고 있다. 그들의 선택은? 창업하거나 연봉이 적은 직장이라도 잡거나 아니면 길바닥에 나가 앉든지.’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근호(6일자)에서 지난 2년간 사무직 전문직 실업률이 2배 이상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타임에 따르면 금융인 경영인 고급관리인 첨단기술직 출신의 실업자가 총실업자 가운데 43%를 차지할 정도다.
‘잘 나가는’ 마케팅 담당임원으로 호주 일본 베네수엘라 등을 누비던 하버드 경영학석사(MBA) 출신 프랭크 루펜(45)은 현재 뉴욕 맨해튼 길가에서 샌드위치를 팔고 있다. 올해 3월 다니던 회사에서 나오게 됐을 때만 해도 새 직장 잡는 것을 만만하게 여겼지만 면접을 보는 족족 퇴짜를 맞았다. 지난해 소니에서 잘린 31세의 댄 오그래디도 “알아보는 직장마다 나보다 수십배는 뛰어난 지원자가 구름처럼 몰렸다”고 털어놨다.
최근의 해고 1순위는 생산직이 아니라 억대 연봉으로 선망을 받던 전문직 종사자다. 정보기술(IT) 거품이 꺼지고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서 EMC 골드만삭스 피델리티 등 정보기술과 금융업계가 고학력 전문직을 줄이고 있다. 제조 서비스업체들에서도 마케팅 기획 전략분야의 임원들이 머물 곳을 찾기 어렵다.
타임은 “아예 새 직장 찾는 것을 포기하고 정육점 가구점 등을 열거나 경찰공무원 등으로 업종을 완전히 바꾸는 전직 경영자나 애널리스트 등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기업이 인력감축에 나서는 이유는 계속되는 경기침체. 그러나 경기가 호전되더라도 화이트칼라들이 ‘폼 나는’ 직장을 다시 갖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화이트칼라의 실업이 경기 침체기의 일시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고용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생기고 있기 때문.
‘초우량기업의 조건’의 저자인 톰 피터스 박사는 최근 저서에서 “블루칼라를 100여년이나 괴롭히던 생산성이라는 ‘포문’이 이제 화이트칼라를 겨냥한다”며 “화이트칼라 직종의 90% 이상이 10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장자동화 등 기업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도입한 기술이 블루칼라를 내몰았듯이 이제 화이트칼라가 효율성 향상의 대상이 됐다는 설명이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