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링과 이동수
먼 발치서 바라만 보아도 왜 이렇게 가슴이 설레는 걸까. 이루기 힘든 사랑인 줄은 알지만 그를 향한 마음을 접을 수 없다.
부산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한 중국 여자 배드민턴의 신예 가오링(23). 한국 배드민턴 대표선수 이동수(28·삼성전기)를 그리는 그의 마음은 이토록 애틋하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혼합복식 금메달리스트 가오링은 현재 세계 여자복식 랭킹 2위에 올라있으며 이동수는 남자복식 랭킹 3위. 이들은 99년 3월 영국에서 열린 전영오픈에 출전하면서 처음 만났다.
처음엔 단순한 호감 정도였다. 그러나 한 해 10차례 이상 열리는 국제대회를 통해 만남이 잦아지면서 호감은 차츰 사랑으로 바뀌었다. 홀로 애정을 키우던 가오링은 이동수를 만날 때마다 인형 열쇠고리 등을 선물하며 자신의 속 마음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이동수 역시 밝고 명랑한 가오링을 따뜻하게 챙겨줬다. 그러나 이동수의 마음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후배에 대한 배려에 가깝다는 것이 주위의 귀띔.
이동수에겐 지금 ‘만나는 사람’이 있다. 지난해 여름 소개받은 국내 항공사의 여자승무원이다. 가오링 역시 이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동수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변함이 없기에 더욱 안쓰럽다.
올들어 이동수와 가오링이 재회한 것은 인도네시아오픈 코리아오픈 전영오픈에 이어 이번 대회가 네 번째. 연습장에서 만날 때마다 간단한 한국어와 중국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나눴다. 이동수의 훈련 장면을 멀찌감치서 지켜보는 가오링의 모습도 자주 눈에 띄었다. 이들은 나란히 이번 대회 단체전 금메달리스트. 지난 9일 결승에서 인도네시아를 누르고 우승한 이동수는 가오링의 뜨거운 축하인사를 받았다.
이동수는 “가오링을 국적을 떠나 가까운 동생으로 여기고 있다”며 “가오링이 나에 대해 갖고 있는 마음이 너무 애틋해 미안한 적이 많다”고 말했다.
국제대회에서 자주 만나다 보면 가까워지기 마련이다. 특히 국제오픈대회가 많은 탁구와 배드민턴의 경우 한국과 중국 선수들은 동료 못지않게 가깝게 지내고, 그러다 보면 국경을 넘은 사랑이 싹트기도 한다.
탁구의 안재형-자오즈민 부부는 그 사랑이 결실을 맺은 케이스. 그러나 배트민턴의 김학균(국가대표팀 코치) 예자오잉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이동수와 가오링의 경우는 짝사랑. 그래서 더 안타깝다.
부산〓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