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G8경제회담이 열린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경찰과 충돌한 세계화 반대 시위자들.-유윤종기자-
◇세계화와 그 불만/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송철복 옮김/432쪽 1만8000원 세종연구원
이 책은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가 세계화가 초래한 부정적 결과, 그 ‘깨어진 약속‘에 대해서 비판한 가장 최근의 저작이다. 스티글리츠(사진)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서뿐만 아니라 1997년 아시아 경제 위기와 이후의 세계 경제 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린 진단과 처방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한 학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승리주의에 대해서도 비판하면서, 시장과 제도 국가의 결합에 기반한 다양한 유형의 자본주의와 투기 금융의 통제 및 노동의 참여에 기반한 민주적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견해를 표명해 왔다. 그가 미국 재무부의 압력 밀려 세계은행 수석 부총재직을 사직하게 된 이유도 이 같은 그의 비판적 입장 때문이었다.
이 책의 아주 큰 장점은 미국의 패권, 국제 금융 자본, IMF 지배 체제가 주도하는 세계화의 어두운 측면에 대해 깊이있게 파헤치면서도, 건전한 상식을 가진 일반 시민이면 누구라도 읽을 수 있도록 평이하게 쓰여졌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저자 자신에게 있어서도 ‘새로운 장르’였다.
이 책에는 단지 저자의 경제학 이론 전문 지식만이 아니라, 빌 클린턴 대통령 시기 경제 자문위원회 의장직, 세계은행 수석 부총재직을 수행하면서 겪은 정책 현장 경험, 그리고 지구촌 수십개 국가를 방문하고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얻은 귀중한 경험적 지식과 정보들이 녹아 들어 있다.
세계화에 대한 비판서라고 하지만, 더 정확한 내용은 미국이 조종하는 국제 금융기관, 무엇보다 IMF의 글로벌 경제 정책, 즉 지구를 누비며 펼치는 시장 물신주의적 구조 조정 프로그램과 국제기관 내부의 불투명하고 무책임한 정책 수립 및 그 결정 방식에 집중되어 있다.
미국의 패권적 이해를 반영한 국제 금융기관의 글로벌 경제정책은 보통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라 불리는데, 그 핵심은 탈규제 자유화, 민영화, 개방화다. 스티글리츠는 이 ‘자유 시장 트리오’를 만능약으로 간주하는 글로벌 경제 정책이 어떻게, 왜 파괴적 결과를 가져 왔는가를 아프리카, 동아시아, 중남미, 그리고 러시아 등지에 걸쳐 비판적으로 분석, 진단한다. 대외 자본 시장 자유화와 긴축·고금리 정책의 위험에 대해서는 특히 힘주어 비판하고 있다.
동아시아 경제 회복과 관련해서는 저자는 IMF 정책 덕분이 아니었다고 본다. 이는 IMF의 충고를 충실히 수용한 나라들보다 말레이시아, 그리고 중국의 독자 노선이 훨씬 더 성공한 데서 잘 나타난다는 것이다. 한국에 대해서는 자본 시장 자유화에 대한 미국의 압력, 긴축 고금리 돌팔이 처방에 대한 불가사의한 침묵과 맹목적 순응 등, 몇 군데 흥미로운 언급들이 보인다. 한국의 경제 회복도 DJ 정부가 IMF에 대한 일방적 순응에서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낸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자본 시장 완전 개방과 빅뱅식 자본 시장 중심체제로의 전환에 대해서 그는 비판적이며, 이것이 몰고올 소용돌이에 대해서 우려하고 있다.
용어 번역과 관련하여 한마디. ‘자기 조절적’ 시장을 ‘자기 규정적’ 시장이라고 번역한 것은 잘못이다.
이 병 천 강원대교수·경제학 lbch@cc.kangw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