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를 위한 동양사상 새로 읽기(1∼4)/제 1권 공자는 왜 소정묘를 죽였는가,제 2권 인류 최초의 반전 평화운동가는 동이족의 목수 철학자,제 3권 일곱 번째 구멍을 뚫으면 도가 죽는 까닭,제 4권 고을은 바뀌어도 우물은 바뀌지 않는다/기세춘 지음/각권 380∼420쪽, 각권 1만3000원 화남
동양사상을 이해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똑같이 제자백가(諸子百家)의 글을 읽으면서도 어떤 이는 시대의 변화를 초월한 영원한 진리를 깨우쳤다며 감격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인류가 궁극적으로 돌아가야 할 도덕적 이상향을 그려낸다. 또 어떤 사람은 사회 구성원들의 역할이 조화롭게 분담된 아름다운 질서를 읽어 내는 반면, 어떤 사람은 착취와 피착취로 얼룩진 계급 질서를 합리화하는 보수 반동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렇게 다양한 이해의 지평이 열려 있기에 동양의 ‘영원한 고전(古典)’일 수 있는지도 모른다.
신세대들을 위해 동양고전의 진수를 주제별로 뽑아서 현대한국어로 번역하고 해설했다는 저자는 당시 사상가들의 시대적 고민과 계급적 정치적 입장에 초점을 맞췄다. 제 1권은 유가(儒家), 제 2권은 묵가(墨家), 제 3권은 도가(道家), 제 4권은 주역(周易)을 다뤘다. 대체로 동양의 고전을 윤리교과서나 처세술로 읽는 데 익숙한 우리에게 저자의 입장은 다소간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일반적인 평가와 달리 묵가를 유가나 도가와 동급 또는 그 이상으로 평가하는 것은 저자의 분명한 입장을 보여 준다. 저자는 묵가를 일으킨 묵자(墨子)를 진보적 사상가로 평가하고 인류 최초의 반전 평화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한 노동계급의 대표라고 설명한다. 이에 반해 계급 질서의 복원을 주장하며 유가를 창설한 공자는 ‘진짜’ 보수의 원조가 된다.
지금까지도 동아시아에서 유교적 전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이 ‘동방예의지국’에서 이런 ‘용감무쌍’한 주장을 하는 저자는 그 경력부터 만만치 않다. 약 500년 전 자신의 아버지뻘 되는 스승이자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퇴계 이황(退溪 李滉)에 대해 반론을 제기해 8년간이나 논쟁을 벌였던 고봉 기대승(高峯 奇大升)이 그의 조상이다. 고봉은 조선 최대의 성리학 논쟁으로 평가되는 사단칠정논쟁(四端七情論爭)을 이끌어 냈던 인물이다. 이런 인연으로 저자는 어린 시절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고, 뒤늦게 신식 교육을 받은 후에는 4·19혁명에도 적극 가담하고 1968년 통혁당 사건에도 연류되는 등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했으며, 현재는 재야에서 사회운동가이자 동양사상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저자가 보기에 신세대가 동양 고전을 가까이하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사회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을 담은 고전을 고리타분한 윤리 규범서로만 이해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에 대한 시대적 고민과 사회구성체의 성격, 지배와 피지배의 구조, 인간에 대한 깊고도 진지한 성찰 등이 뒷받침될 때 신세대가 동양사상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저자의 이해방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론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기존의 동양사상 해설서에서 보기 힘든 동양사상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김형찬 기자철학 박사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