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프 하우블은 시기심이 결핍감 및 평등에의 욕구와 관련된 인간의 원초적 심리상태라고 진단한다. 세익스피어의 ‘오셀로’.-동아일보 자료사진
□시기심 / 롤프 하우블 지음 이미옥 옮김 / 416쪽 1만6500원 에코리브르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 중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게 명품에 대한 태도다. 명품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누구나 1등석에 앉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1등석에 앉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많아진다면 그 의미가 달라진다. 이때부터는 남들과 다른 대우를 받겠다는 욕망에서 같은 대우를 받겠다는 욕망으로 바뀐다. 같은 대우를 받겠다는 욕망도 있을까? 거리에서 명품 가방을 볼 때마다 드는 의문이다.
독일의 심리학자인 롤프 하우블의 ‘시기심’은 이 욕망이 시기심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밝힌다. 이 책은 문학, 회화, 종교, 철학 등에 나타난 시기심의 여러 유형을 근거로 제시하며 인간 본성 중 시기심에 해당하는 심리 상태를 설명한다. ‘오셀로’, 영화 ‘세븐’ 등 시기심을 다룬 작품을 망라하고 마르크스, 괴테, 니체, 프로이트 등 시기심을 학문적 논의로까지 끌어올린 사상가들의 견해를 수록해 시기심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은 이 책이 가진 미덕이다.
이 책이 ‘카인 콤플렉스’에서 논의를 시작하는 데서 알 수 있다시피 시기심은 문명화 과정에서 생성된 심리 상태라기보다는 인간이 타고난 심리 상태다. 젖을 뗀 맏이가 갓난 동생을 괴롭히는 것이나, 남근을 향한 여자아이의 결핍감 등은 시기심이 원초적인 감정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시기심은 대단히 흥미로운 결과를 낳는다. 이 책에 따르면 ‘시기심은 극단이 아니라 중간을 장려하는 경향’이 있으며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든다’. 다시 말하면 평등의식 역시 타고난 감정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명품 가방은 평등의식의 왜곡된 형태다. 어떤 희생을 하더라도 명품 가방을 들겠다는 것은 시기심이 일어 참을 수 없으니 나도 동등한 대우를 받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렇게 비판한다고 해서 내게 명품에 대한 시기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나는 명품 가방을 천박함의 상징으로 여기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하우블에 따르면 이는 경제력이 높은 대상을 정신적으로 낮춰보는 것을 통해 평등을 이뤄내려는 시기심에서 비롯한다. 값비싼 명품 가방을 구입하는 것보다 정신적으로 천박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일이 더 우아하긴 해도 내게 시기심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시기심의 가장 놀라운 점은 부자가 땅을 사면 그렇지 않은데,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점이다. 데이비드 흄은 이를 ‘철학자를 시기하는 작가는 거의 없다’는 말로 표현했다. 이 책의 설명대로 풀자면, 우리는 박찬호의 어마어마한 연봉을 시기하지 않는다. 슬럼프에 빠진 박찬호가 우리처럼 괴로워한다는 뉴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시기심을 보상받는다. 하지만 초등학교 동기생의 연봉이 1억이 넘는다면 이건 상당히 심각한 소화장애를 일으킨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천재든 저능아든, 누구나 시기한다는 점에서 시기심은 평등한 감정이다. 그러니 건강한 사람이라면 시기심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노력할 수 있는 용기. ‘시기심’은 결국 이 용기에 대한 책이다. 발자크는 시기심을 ‘이룰 수 없는 희망, 실패한 재능, 좌절한 성공, 거부당한 요구들이 도망쳐서 숨는 끔찍한 도피처’라고 말했다. 희망만이 그 도피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그렇다면 누구나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는 한국 사회에는 희망을 가지기 힘든 나라인가. 심각하게 생각해볼 문제다.
김연수 작가 larvatus@net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