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고은씨 / 피아니스트겸 작곡가 임동창씨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됐던 10일 저녁. 유력한 수상 후보로 손꼽혔던 시인 고은씨의 경기 안성 자택에는 하루종일 전화가 빗발쳤다. 기자들이 노벨상 발표 며칠 전부터 천막을 치고 기다렸다는 독일의 귄터 그라스 자택 앞의 풍경만큼은 아니더라도 한국문학사상 최초의 경사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으로 흥분된 분위기였다. 이날 저녁 때는 컬트 피아니스트 임동창, 김영사 박은주 사장 등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들도 고은 시인의 집에 모여들었다.
이들과 함께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가장 재미있는 화제는 고은의 선(禪)시집 ‘뭐냐’를 연가곡집으로 만드는 임동창씨의 작곡작업. 임씨는 30일 총 38권에 이르는 방대한 ‘고은 전집’(김영사)의 출판 기념회에서 축하연주를 맡기로 했다.
“작곡을 위해 일주일 동안 밤새워 선생님 시집을 읽었어요. 제겐 시를 넘어서 세상을 향한 법문이자 경전이라고 느꼈습니다. ‘겉살림’과 ‘속살림’, 음양이 오묘하게 조화된 시어 하나하나를 보니 그대로 노래고 음악이어서 작곡이 오히려 쉬웠습니다.”
작곡작업을 하면서 임씨는 ‘뭐냐’가 겉으로 드러나는 시적 아름다움을 넘어서 세상을 향해 외치는 시인의 깨달음의 법문을 담은 거대한 ‘화엄(華嚴)세계’와 같은 시집임을 느꼈다. 그는 우선 고은의 선시집 ‘뭐냐’에 실린 ‘저 건너’와 ‘잉크’를 각각 피아노 반주에 맞춘 전통가곡과 판소리로 작곡해 출판기념회에서 첫선을 보인다. 앞으로 선시 90여편이 수록된 선시집 ‘뭐냐’를 판소리와 가곡 등 다양한 형태의 연가곡집으로 내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임씨가 고은 시인을 만난 것은 약 2년 전. 그에게 어렸을 적 피아노를 가르쳐주셨던 은사가 시인과 일찍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기에 인연의 끈은 더 길다. 고은 시인은 효봉스님의 상좌로 12년 동안 승려생활을 했고, 임씨도 21세 때 인천 용화사의 송담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경력이 있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이 만났을 때 나이 차이는 컸지만 서로간에 ‘불꽃 튀기는’ 예술적 감전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만난 날 고은 시인은 임동창에게 ‘동창불(佛)’이란 애칭을 지어주었다.
고은 시인은 12일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프랑스의 문화애호가들을 대상으로 ‘시낭송회’를 갖는다. 그는 이미 수차례 미국 캐나다 독일 등에서 각국의 문학인들과 함께 시낭송회를 가진 바 있다.
10일의 저녁식사 자리에 합석했던 김영사의 박은주 사장은 “앞으로 고은 선생님의 시낭송회엔 시를 바탕으로 작곡한 임동창 선생님의 연주도 함께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우리 문화의 깊이를 더하고, 해외에도 효과적으로 알리는데는 너무도 좋은 아이디어라며 술자리의 모든 사람들은 정겹게 잔을 부딪쳤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