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경제 당분간 침체없이 성장"▼
“당분간 미국 경제는 ‘더블딥’(Double Dip·경기가 반짝 회복하는 듯하다 다시 침체기가 계속되는 경기 사이클) 없는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입니다.”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의 프레드 버그스텐 소장(사진)은 11일 “최근 뉴욕증시가 급락하고 있지만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며 “미 경제는 공급 면에서 커다란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경제연구원(이사장 사공일)과 한국무역협회 공동 주최로 11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조찬간담회에서 버그스텐 소장은 ‘미국 경제, 달러 및 대외통상정책’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대(對)이라크전이 세계경제와 국제유가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빌 클린턴 전임 행정부 시절 의회 경쟁력정책위원회 의장을 역임하는 등 민주당 정권의 경제정책 입안 과정에서 주요 브레인으로 활약했던 버그스텐 소장은 미국내 대학과 연구소를 통틀어 한국 경제상황에 가장 밝은 인물중 한 명으로 꼽힌다.
다음은 기자회견의 주요 내용.
-미국 경제가 더블딥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큰 데 이에 대한 의견은….
“올해 미 경제는 4%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비슷하다. 침체 가능성이 적은 것은 생산성 향상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기 때문. 생산성 증가의 3대 요인인 정보기술(IT) 혁명, 신기술 사용범위 확대,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한 미국 경제의 더블딥 가능성은 희박하다. 여기에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저금리 및 정부지출 확대 정책도 수요 증가에 일조하고 있다. 증시 하락, 기업회계 스캔들, 이라크전이 경제 불확실성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지만 침체를 유발할 만큼 강력한 요인들은 아니다. 지난 2년여 동안 계속돼온 뉴욕 증시의 조정 국면은 이제 끝나가고 있다. 바닥권에 근접해 있다는 것이다. 주가총액, 주가수익비율(PER) 등으로 볼 때 증시는 90년대말 거품 이전 상황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대(對)이라크전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볼 때 이라크전은 단기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미국은 이라크전이 발발할 경우 5억8000만배럴에 달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전략비축유를 풀 것이 확실하다. 91년 걸프전때도 미국이 비축유 방출을 개시하자 배럴당 40달러 하던 유가는 20달러로 급락했다. 미국 경제는 사실 그때부터 성장 가도에 들어섰다.이라크전이 장기화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의 이라크 장기 점령은 가능한 시나리오다.” -한국은 외환위기 뒤 꾸준한 회복기를 맞고 있는 반면 일본은 장기 침체가 계속되고 있다. 두 나라를 비교한다면…. “특정 국가에만 적용되는 독특한 경제·경영 방식이란 없다. 미국은 90년대초 일본의 기법을 배워 경영에 접목해 성공을 거뒀다. 일본은 90년대말 미국 경제의 장점을 배우지 않았고 이로 인해 현재 고전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선진 경제·경영 구조 도입에 훨씬 개방적이다. 여기에 통일이 이뤄지면 한국은 일본보다 훨씬 탄탄한 노동 시장을 갖는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30년대이후 최악 디플레 위험"▼
세계경제가 대공황 직후인 1930년대 이래 최악의 디플레이션 위협에 직면했다고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12일자에서 경고했다.
특히 최근처럼 가계와 기업의 빚이 급증한 상태에서 디플레이션은 장기적인 경기침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진단했다.
▽디플레이션 오나〓디플레이션은 물가수준이 전반적으로 낮아지는 현상. 아직은 일본과 달리 미국, 독일 등의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는 “실제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 낮으면 물가는 계속 하락한다”며 “미국의 경우 향후 2년간 3.5% 이상씩 성장하지 못하면 물가하락 압력이 계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디플레이션의 징후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율은 지난 40년 동안 가장 낮은 수준인 1.1% 선. 소비자 물가지수 상승률은 1.8%에 불과하며 그중 16개 주요 품목은 가격이 떨어졌다. 금융업종을 제외한 산업물가지수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하락세로 돌아섰다. 이코노미스트는 “정책당국자들은 낙관론을 펴고 있지만, 일본에 이어 미국과 유럽에서도 디플레이션이 현실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 등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유로화권의 물가상승률을 2% 이내로 유지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디플레이션이 진행돼도 속수무책이다. 독일의 식음료와 에너지를 제외한 물가상승률은 유로권의 3년간 평균치보다 0.6%포인트 낮은 수준.
일본 국민경제연구협회도 “일본 물가하락이 2005년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디플레이션, 문제인가〓‘가계가 소비를 줄인다→기업 매출이 준다→기업은 임금을 깎고 인력을 감축한다→가계소득이 줄어든다→가계가 소비를 줄인다….’
가계나 기업의 부채가 많을 때는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이 더 위험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
디플레이션은 화폐가치가 커지는 것이므로 갚아야 할 실질적인 빚이 많아지는 효과를 낳는다. 33년 미국 경제학자 어빙 피셔가 논문 ‘대공황기의 부채-디플레 이론’에서 밝힌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는 것.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수년간 은행들의 대출 경쟁과 부동산 붐 등을 타고 기업과 가계의 대출이 급증해 디플레이션의 위험성이 어느 때보다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의 소비심리는 이미 위축된 상태다.
파이낸셜타임스 11일자에 따르면 JC페니, 라이벌타깃, 시어스로벅 등 미국 대형 유통업체들의 9월 매출은 지난해 9월보다 떨어졌다. 월마트는 매출이 소폭 올랐으나 당초 예상 성장률에는 크게 못 미쳤다.바나드 유통컨설팅 그룹은 “9·11테러로 소비가 크게 줄었던 지난해보다도 매출이 안 좋다는 것은 심각한 상황”이라며 “크리스마스 시즌까지 소비 경기가 풀리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했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